트럼프의 관세와 전쟁, 왜 이해가 안 가는가

— 관(觀)의 괘로 읽는 ‘다른 판’의 논리


1. 서론 — 이해가 안 가는 정책, 이해가 안 가는 전쟁

트럼프의 관세정책과 그의 전쟁 방식은, 일반인의 눈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경제학 교과서는 관세가 양쪽 모두를 손해하게 만든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도 그는 관세를 협상 카드로, 압박 수단으로, 정치적 메시지로 동시에 씁니다. 나라를 기업처럼 대하고, 동맹을 거래 상대로 대하며, 전쟁마저도 계산서를 주고받는 협상의 연장으로 다룹니다. 왜 이런 정책이 나오는 것일까요.

주역의 눈으로 보면, 이 질문은 ‘왜 저 사람은 이해가 안 가는가’가 아니라 **’그는 어떤 괘를 보고 있는가’**로 바뀌어야 합니다. 같은 대상을 두고도 서로 다른 괘를 보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은 그 ‘다른 판’의 논리를 주역의 괘로 풀어봅니다. 결론은 마지막에 두겠습니다.

2. 관(觀)의 위치 — 같은 세상, 다른 괘

주역 20번째 괘 풍지관(風地觀)은 ‘보는 것’의 괘입니다. 바람이 땅 위를 스치며 만물을 살피는 형상이지요. 그런데 이 괘의 핵심은,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보는 사람의 위치(位)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것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관(觀)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보는 자의 자리에서 세계를 재구성하는 눈입니다.

일반인이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정책이 비합리적이어서가 아닙니다. 일반인이 보는 괘와 트럼프가 보는 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 일반인이 보는 괘 — 무역은 지천태(地天泰)입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하듯, 값싼 물건이 오고 돈이 가고, 양쪽이 함께 이득을 봅니다. 그래서 관세는 “다 같이 손해 보는 짓”으로 보입니다.
  • 트럼프가 보는 괘 — 무역은 천수송(天水訟)입니다. 상대가 이기면 내가 지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관세는 “빼앗긴 것을 되찾는” 도구로 보입니다.

같은 무역을 한쪽은 ‘함께 커지는 판’으로, 다른 쪽은 ‘이기고 지는 판’으로 봅니다. 괘가 다르니 정책도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관(觀)의 문제입니다.

3. 관세정책의 괘 — 택천쾌(澤天夬), 과감히 끊어내는 결단

트럼프식 관세를 주역의 괘로 옮기면 43번째 괘 택천쾌가 가장 가깝습니다. 쾌(夬)는 ‘결단하다, 끊어내다’는 뜻입니다. 구조를 보면 아래 다섯 효가 모두 양(陽)이고 맨 위 하나만 음(陰)입니다. 강한 무리(5양)가 남은 약한 하나(1음)를 밀어내어 끊어내려는 형국입니다.

쾌괘의 괘사는 “왕의 뜰에서 외친다”고 합니다. 결단을 감추지 않고 천하에 공개적으로 선언한다는 뜻입니다. 트럼프가 관세를 조용한 통상 조치가 아니라 소셜 미디어와 기자회견에서 연일 선언하는 것은, 이 ‘쾌(夬)’의 성격과 정확히 맞습니다. 끊어내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끊어낸다는 선언으로 상대를 흔들어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쾌괘는 승리의 괘가 아닙니다. 쾌(夬)의 상전은 “군자가 덕을 베풀되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경고합니다. 힘으로 끊어낸 자가 그 힘을 오래 쓰면, 끊긴 상대들이 다시 뭉쳐 반격합니다. 쾌괘는 ‘결단’의 괘이지 ‘지속’의 괘이 아닙니다.

4. 트럼프만의 전쟁 — 뇌천대장(雷天大壯), 힘으로 밀어붙임

“트럼프만의 전쟁”이라는 표현은 34번째 괘 뇌천대장으로 읽힙니다. 대장(大壯)은 ‘큰 힘’의 괘입니다. 하늘 위로 우레가 치솟는 형상 — 힘이 넘쳐 앞으로 밀어붙이는 국면입니다. 그런데 대장괘에는 유명한 경고가 붙어 있습니다. “숫양이 울타리를 받는다(羝羊觸藩).” 힘이 세서 뿔로 울타리를 들이받지만, 뿔이 울타리에 걸려 꼼짝 못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은 초반에는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과하게 쓰면 오히려 자기 뿔이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역설에 빠집니다. 대장(大壯)의 효사는 이 함정을 반복해서 경고합니다. 힘의 논리는 “세면 이긴다”인데, 국제 질서에서는 힘의 과용이 곧 고립을 낳습니다. 힘의 논리와 질서의 논리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니,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습니다.

5. 더 깊은 배경 —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질서를 흔드는 택풍대과(澤風大過)

한 층 더 들어가면 지금 세계는 수화기제 — 2차 대전 후 미국이 세운 ‘완성된 질서’ — 의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기제는 “이미 건넜다”는 완성의 괘이지만, 그 괘사는 “처음은 길해도 끝은 어지럽다”고 경고합니다. 완성된 질서는 안에서부터 낡아가고, 낡아가는 질서는 그것을 흔드는 힘을 부릅니다.

트럼프의 정책을 그 흔드는 힘으로 보면, 택풍대과 — ‘큰 지나침’ — 의 형상입니다. 대과는 들보가 무거워 휘어지는 괘로, 기존 구조가 감당하기 어려운 과부하를 뜻합니다. 기제(완성된 질서)가 낡았을 때 대과(과부하)가 오고, 대과는 다시 중수감(重水坎)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국제 질서의 괘상입니다. 그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가 흔드는 세계가 이미 낡아 있다는 것입니다.

6. 주역의 평가 — 힘의 괘는 어디로 가는가

주역은 결과를 단정하지 않지만, 조건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있습니다. 쾌(夬)의 결단은 힘 있는 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대장(大壯)의 힘은 협상 테이블에서 압박이 됩니다. 실제로 관세는 협상 카드로 기능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조건이 붙습니다. 무역은 본래 지천태의 괘, 곧 ‘통함’의 행위입니다. 통함을 끊는 정책이 반복되면, 세계는 태(泰)에서 천지비(天地否) — 막힘 — 로 넘어갑니다. 비(否)의 세계에서는 모든 나라가 손해를 보고, 그 손해는 결국 중심국에도 돌아옵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어느 한쪽도 오래 풍요로울 수 없습니다.

결정적 위험은 고립입니다. 쾌(夬)로 끊어낸 상대들이 다시 뭉치면, 그 뭉침은 미국을 향합니다. 강한 자가 사방을 적으로 만들면, 그 힘은 오히려 자기 감옥이 됩니다. 대장(大壯)의 숫양이 뿔이 걸리듯, 세계 곳곳에 관세라는 울타리를 세우면 정작 자신이 그 안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7. 왜 이해가 안 가는가 — 정리(結)를 향하여

여기까지 정리하면, 트럼프의 정책이 이해가 안 가는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관(觀)의 차이입니다. 관찰자는 무역을 태(泰)의 괘로, 그는 송(訟)의 괘로 봅니다. 같은 세계가 두 개의 다른 판으로 보이니, 정책도 두 개의 논리로 갈립니다.

둘째, 시간축의 차이입니다. 관찰자는 장기의 통함(태)을 보고, 그는 단기의 결단(쾌)을 봅니다. 그래서 “다 같이 손해”라는 계산이 그에게는 “지금 당장 되찾는다”는 계산으로 바뀝니다.

셋째, 질서의 낡음입니다. 지금의 국제 질서는 기제(완성)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낡은 질서가 흔들릴 때 나타나는 인물과 정책은, 그 질서 안에 사는 사람의 눈에는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질서 밖에서, 혹은 질서에 얹혀 사는 자의 논리를 벗어나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8. 결론 — 괘는 판단이 아니라 조건을 말한다

주역으로 트럼프의 정책을 보면, “미친 짓”인지 “탁월한 수”인지를 판정하는 것은 주역의 일이 아닙니다. 주역이 하는 일은 조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힘으로 판을 흔드는 것은 괘를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이 새로운 통함(태)을 세우지 못하면, 남는 것은 막힘(비)과 혼란(감)입니다.

그러니까 이 정책들이 이해가 안 가는 게 정상입니다. 이해가 안 가는 이유는, 그 정책이 ‘이해 가능한 질서’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질서를 흔들어 자기 자리를 다시 세우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판 위에 앉아 있는 자의 논리와, 판을 흔드는 자의 논리는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주역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묻습니다. “그 흔들림이 새 판(정·鼎)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혼란(감·坎)만 남길 것인가.” 관세와 압박이 새로운 질서를 세우면 그것은 혁(革)에서 정(鼎)으로 가는 길이 되고, 흔들기만 하고 세우지 못하면 그것은 혁(革)에서 감(坎)으로 가는 길이 됩니다. 같은 힘도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길(吉)이 되고 흉(凶)이 됩니다.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힘의 크기가 아니라, 흔든 뒤에 무엇을 세우느냐입니다. 트럼프의 정책이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이,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흔드는 판 뒤에, 과연 새 판이 준비되어 있는가.”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