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응의 길, 마음을 열어 소통하다
서론: 상경(上經)을 넘어, 하경(下經)의 문을 열다 – 관계의 시작, 함(咸)
주역(周易) 64괘¹ 탐험, 우리는 하늘(乾)과 땅(坤)²에서 시작하여 우주 자연의 근본 원리와 그 변화 과정을 다루는 상경(上經, 1~30괘)³⁰의 여정을 마쳤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른한 번째 괘이자 하경(下經, 31~64괘)의 문을 여는 첫 번째 괘, **택산함(澤山咸)**을 통해 인간 사회와 관계의 영역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섭니다. 함(咸)이라는 글자는 ‘느끼다’, ‘감응하다’, ‘서로 통하다’, ‘모두’ 등의 의미를 가지며, 주역에서는 특히 남녀 간의 자연스러운 이끌림과 감정적 교류, 나아가 **만물 간의 보편적인 상호 감응(感應)**의 원리를 상징합니다.
상경의 마지막 괘인 중화리(重火離)³¹가 밝음(明)과 문명의 정점을 보여주었다면, 하경의 시작인 함괘(咸卦)는 그 문명의 근간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 즉 남녀(男女) 또는 부부(夫婦)의 결합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주역 괘의 순서를 설명하는 서괘전(序卦傳)³²에서는 “천지가 있은 연후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연후에 남녀가 있으며, 남녀가 있은 연후에 부부가 있고…” (有天地然後有萬物 有萬物然後有男女 有男女然後有夫婦…) 라고 하여, 함괘가 인간 사회 구성의 자연스러운 시작점임을 설명합니다. 리(離)괘 다음 함괘가 오는 직접적인 이유는 명확히 언급되지 않으나, 상경(자연)과 하경(인간사)을 잇는 다리로서, 하늘과 땅처럼 음양(男女)의 자연스러운 감응을 다루는 함괘가 하경의 시작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본 것입니다.
따라서 함괘는 주역에서 ‘관계의 시작’, ‘소통과 교감’, 그리고 **’진실된 감정’**의 중요성을 다루는 매우 중요하고 근본적인 괘입니다. 젊은 남녀(少男少女)가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이끌리듯, 이 괘는 어떤 인위적인 의도나 계산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감응하는 것의 아름다움과 그 힘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모든 감응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함괘는 감응이 신체의 어느 부위(발가락, 장딴지, 넓적다리 등)에서 일어나느냐에 따라 그 깊이와 결과가 달라짐을 보여주며, 피상적인 감정이나 충동적인 행동의 위험성 또한 경계합니다.
이 글은 주역 입문서들의 보편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함괘의 구조와 상징, 괘 전체의 의미를 담은 괘사(卦辭)³³, 그리고 감응의 과정이 펼쳐지는 6단계의 상황과 그 속에서의 지혜와 경계를 보여주는 각 효사(爻辭)³⁴를 분석합니다.
함괘의 여정은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모든 인간관계와 소통의 근본 원리로서 ‘진심으로 느끼고 응답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우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제1부: 함괘(咸卦)의 구조와 상징 – 산 위의 연못, 젊음의 감응
64괘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그 구조와 상징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함괘는 산과 연못의 조합, 그리고 효의 구성을 통해 ‘감응’과 ‘젊음’, ‘교감’의 이미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1. 팔괘(八卦)³⁵의 조합: 산(艮 ☶) 위에 연못(兌 ☱)
함괘는 팔괘 중 산(山) 또는 멈춤(止), **소남(少男, 막내아들)**을 상징하는 간(艮 ☶) 괘가 하괘(下卦, 아래)에 놓이고, 연못(澤) 또는 기쁨(悅), **소녀(少女, 막내딸)**를 상징하는 태(兌 ☱) 괘가 상괘(上卦, 위)에 놓인 형태입니다.
- 하괘 간(艮 ☶): 맨 위 하나의 양효(⚊)가 아래 두 개의 음효(⚋) 위에 얹혀 멈추어 선 모습. 멈춤(止), 산, 견고함, **아래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기다리는 젊은 남성(少男)**을 상징합니다.
- 상괘 태(兌 ☱): 맨 위 하나의 음효(⚋) 아래 두 개의 양효(⚊)가 있는 모습. 기쁨(悅), 말(言), 연못, **위에서 부드럽게 감응하고 화답하는 젊은 여성(少女)**을 상징합니다.
- 조합의 의미 (澤山咸): 산(艮) 위에 연못(兌)이 있는 모습입니다. 산 위에 있는 연못은 하늘의 비를 받아 물을 저장하고, 그 물은 다시 산 아래로 흘러내려 만물을 적십니다. 이는 산과 연못이 서로 기운을 주고받으며 교감하는(咸) 자연스러운 관계를 보여줍니다. 특히, 이 괘는 아래에 있는 젊은 남자(艮, 少男)가 위에 있는 젊은 여자(兌, 少女)에게 먼저 마음을 두고 겸손하게 다가가고(男下女), 여자가 그 마음에 기쁘게(悅) 화답하는 모습으로 해석됩니다. 이는 남자가 먼저 자신을 낮추고 여자를 존중하며 구애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임을 상징합니다. (반대로 여자가 아래, 남자가 위에 있는 32번 뇌풍항(雷風恒)괘는 장남과 장녀의 결합으로, 오래 지속되는 부부 관계를 상징합니다.) 이처럼 **젊은 남녀 간의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감응(咸)**이 바로 함괘의 핵심 이미지입니다.
- 함(咸)과 감(感)의 차이: 함(咸)은 ‘느낄 감(感)’ 자에서 ‘마음 심(心)’ 자를 뺀 글자입니다. 주역에서는 의도적으로 함(咸) 자를 사용하여, 이 감응이 어떤 사사로운 마음(私心)이나 의도(意圖) 없이, 순수하고 자연 발생적으로(無心) 일어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계산적이거나 인위적인 감정이 아닌, 하늘의 이치에 따른 본능적인 이끌림이라는 의미입니다.
2. 괘의 모습(象): 산 위의 연못, 마음을 비워 받아들이다
주역 해설서인 ‘상전(象傳)’³⁶에서는 함괘의 상하 팔괘 조합을 보고 그 상징적인 이미지를 설명합니다. 함괘에 대한 상전(대산전, 大象傳)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山上有澤 咸 君子以虛受人” (산상유택 함 군자이허수인)**³⁷
- 해석: “산(山) 위에(上) 연못(澤)이 있는(有) 것이 함(咸)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마음을 비우고(虛) 사람(人)을 받아들인다(受).”
- 의미: 산 위에 있는 연못(山上有澤)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기운(수증기 등)이나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스스로를 비워 받아들임(虛)**으로써 물을 채웁니다. 이것이 바로 서로 통하고 느끼는 감응(咸)의 모습입니다. 군자(주역에서 이상적인 인간상)는 이러한 연못의 모습을 본받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의 아집이나 편견, 선입견을 비우고(虛)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의견이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여야(受人) 한다는 가르침을 이끌어냅니다. 이는 진정한 소통과 감응은 ‘마음을 비우는 것’에서 시작됨을 강조하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타인의 마음이 들어올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3. 핵심 키워드와 상징
함괘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핵심 속성: 느낌, 감응, 교감, 소통, 이끌림, 매력, 결합, 결혼, 관계의 시작
- 자연 상징: 산 위의 연못, 서로 기운을 주고받음
- 인간사 상징: 남녀 간의 사랑, 결혼, 우정의 시작, 새로운 파트너십, 공감, 영감
- 핵심 원리: 허수(虛受) –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임, 무심(無心) – 사심 없는 자연스러운 감응
- 핵심 과제: 진실된 감정, 올바른 소통, 충동 경계, 관계의 발전 단계 인식
함괘는 모든 관계의 시작점에 있는 설렘과 이끌림의 에너지를 보여주지만, 그 감정이 어떻게 발전하고 유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 또한 요구합니다.
제2부: 괘사(卦辭) – 함괘 전체의 의미: “亨 利貞 取女吉”
괘사(卦辭)는 괘 전체에 대한 설명과 길흉 판단입니다. 함괘의 괘사는 감응(咸)의 본질적인 길함과 그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咸 亨 利貞 取女吉”
**(함 형 리정 취녀길)**³⁸
- 해석: “함(咸)은 형통(亨)³⁹하니, 올곧음(貞)⁴⁰이 이롭고(利), 아내(女)를 취(取)하면 길(吉)하다.”
- 의미:
- 형(亨): 형통하다. 괘사는 먼저 함(咸), 즉 서로 느끼고 감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고 막힘없이 통하는(亨) 길한 이치임을 선언합니다. 마음이 통하는 것은 우주의 자연스러운 법칙이며,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시작입니다.
- 리정(利貞): 올곧음이 이롭다. 하지만 이 형통함은 **반드시 ‘정(貞)’, 즉 올곧음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이롭다(利)**는 중요한 조건을 붙입니다. 여기서 ‘정(貞)’은 ① 감응하는 대상과 동기가 올바른가? ② 그 감정이 진실되고 변치 않을 것인가? ③ 관계를 맺는 과정이 예의와 도리에 맞는가? 등을 포함합니다. 즉, 단순한 충동적인 감정이나 부정한 관계는 결코 이롭지 않으며, 진실되고 올바른 바탕 위에서 맺어지는 감응만이 진정한 길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 취녀길(取女吉): 아내를 취하면 길하다. 이는 함괘가 주로 **남녀 간의 결합, 즉 ‘결혼’**이라는 맥락에서 해석됨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젊은 남녀가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이끌려 올바른 도리(貞)에 따라 부부의 연을 맺는 것은 매우 길(吉)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건강한 가정의 형성이 인간 사회의 근본임을 강조하는 주역의 관점을 반영합니다. (단, 현대적으로는 결혼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진실된 파트너십 형성이 길하다고 확장하여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괘사는 순수하고 올바른 감응(咸)은 그 자체로 형통(亨)하며, 특히 남녀 간의 올바른 결합(取女吉)은 매우 길하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진정으로 이롭기 위해서는 반드시 ‘올곧음(貞)’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제3부: 효사(爻辭) – 6단계 변화: ‘감응(咸)’의 부위별 깊이와 결과
이제 함괘의 6개의 효(爻)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함괘의 효사는 매우 독특하게도 감응(咸)이 일어나는 신체 부위를 아래(발)에서 위(혀)로 옮겨가며 묘사합니다. 이는 감응의 깊이와 성격이 단계별로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어떤 부위의 감응이 길하고 어떤 부위의 감응이 흉하거나 경계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1. 초륙(初六): 함기무(咸其拇)
- 원문: 初六 咸其拇 (초륙 함기무)
- 해석: “초륙은 그 엄지발가락(拇)⁴¹에서 느낀다(咸).”⁴²
- 위치와 상징: 맨 아래 첫 번째 효. 함괘의 시작. 하괘 간괘(艮☶)의 아래에 있는 음효(⚋)입니다. 음(陰)의 자리에 음효가 온 바른 자리(正)입니다. 감응이 막 시작되는 가장 미미하고 표면적인 단계입니다.
- 의미와 조언: 감응이 몸의 가장 아래 끝인 엄지발가락(拇)에서 처음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이는 마음이 움직이려는 아주 미약한 초기 충동만을 의미합니다. 아직 구체적인 생각이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그 영향력도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길흉(吉凶)을 논할 것이 없습니다. 단지 감응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일 뿐입니다. 섣불리 행동하기보다는 이 감정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좋습니다.
- 소상전(小象傳) 해설: “咸其拇 志在外也” (함기무는 뜻(志)이 밖(外)에 있기 때문이다.)⁴³ – 비록 발가락의 미미한 움직임이지만, 그 마음(志)은 이미 외부의 대상(外)을 향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 주역 입문 관점: 모든 관계는 아주 작은 끌림에서 시작된다. 처음 느껴지는 미미한 감정이나 충동을 무시하지 말고 주목하라.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므로 섣부른 행동은 금물이다. 감정의 시작을 인지하는 단계.
2. 육이(六二): 함기비(咸其腓) 흉(凶) 거길(居吉)
- 원문: 六二 咸其腓 凶 居吉 (육이 함기비 흉 거길)
- 해석: “육이는 그 장딴지(腓)⁴⁴에서 느끼니, (섣불리 움직이면) 흉(凶)하고 가만히 있으면(居) 길(吉)하다.”⁴⁵
- 위치와 상징: 하괘 간괘(艮☶)의 가운데 두 번째 효. 음(陰)의 자리에 음효(⚋)가 온 **중정(中正)**⁴⁶의 자리입니다. 장딴지는 발보다 위에 있으며 움직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부위입니다. 감응이 조금 더 강해진 단계입니다.
- 의미와 조언: 감응이 움직임을 주관하는 장딴지(腓)에서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이는 마음이 동하여 즉각적으로 행동하고 싶어지는 충동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단계의 감응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고, 중정(中正)의 덕을 갖춘 육이는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만약 이 충동(腓)에 따라 섣불리 움직이면(行) 상황을 그르쳐 **흉(凶)**하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가만히 제자리에 머물며(居) 마음을 다스리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길(吉)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초기의 감정에 휘둘려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효입니다.
- 소상전 해설: “雖凶居吉 順不害也” (수흉거길은 순(順)하면 해(害)롭지 않기 때문이다.) – 비록 움직이면 흉하지만, 순리(順, 중정의 덕을 지키며 멈춤)를 따르면 해를 입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 주역 입문 관점: 감정에 휘둘려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라. 강한 이끌림을 느낄 때일수록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내와 자제력이 중요하다.
3. 구삼(九三): 함기고(咸其股) 집기수(執其隨) 왕린(往吝)
- 원문: 九三 咸其股 執其隨 往吝 (구삼 함기고 집기수 왕린)
- 해석: “구삼은 그 넓적다리(股)⁴⁷에서 느끼니, 그 따르는 것(隨)을 고집(執)⁴⁸하여 가면(往) 후회(吝)⁴⁹할 것이다.”⁵⁰
- 위치와 상징: 하괘 간괘(艮☶)의 맨 위 세 번째 효. **양효(⚊)**이며 양(陽)의 자리에 와서 자리는 바르지만(正), 중(中)을 벗어났고 하괘(艮, 멈춤)의 끝에 위치하여 매우 불안정하고 움직이려는 욕구가 강한 자리입니다. 넓적다리는 걷고 따르는(隨) 행동의 중심입니다.
- 의미와 조언: 감응이 걷고 움직이는 행동의 중심인 넓적다리(股)에서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이는 강력한 욕망이나 충동에 이끌려 맹목적으로 대상을 따라가려는(隨) 모습입니다. 구삼은 강한 양(陽)의 성급함까지 더해져,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고집스럽게(執) 그 대상을 쫓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맹목적이고 집착적인 따름(執其隨)**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으며, 결국 후회하거나(吝)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이는 감정에 눈이 멀어 이성적인 판단을 잃고 집착하는 것의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 소상전 해설: “咸其股 亦不處也 志在隨人 所執下也” (함기고는 또한 머무르지(處) 못하는 것이다. 뜻(志)이 남을 따르는(隨人) 데 있으니, 고집하는(執) 바가 천하다(下).) – 넓적다리의 감응은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며, 남을 맹목적으로 따르려는 그 마음 자체가 저급한 것임을 지적합니다.
- 주역 입문 관점: 사랑이나 관계에 있어 집착은 금물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은 좋지만, 그것이 맹목적인 추종이나 집착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성적인 판단과 절제가 필요하다.
4. 구사(九四): 정길(貞吉) 회망(悔亡) 동동왕래(憧憧往來) 붕종이사(朋從爾思)
- 원문: 九四 貞吉 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 (구사 정길 회망 동동왕래 붕종이사)
- 해석: “구사는 올곧음(貞)을 지키면 길(吉)하고 후회(悔)가 사라지니(亡), 마음이 흔들려(憧憧)⁵¹ 오락가락(往來)하더라도 친구(朋)들이 너(爾)의 생각(思)을 따를(從) 것이다.”⁵²
- 위치와 상징: 상괘 태(兌☱)의 맨 아래 네 번째 효. **양효(⚊)**이며 음(陰)의 자리에 와서 부당위(不當位)하지만, **상괘(공적인 영역, 마음의 영역)**로 진입했고 아래의 세 효와 달리 사사로운 감정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감응을 추구할 수 있는 위치입니다. 마음(心)의 자리에 해당합니다.
- 의미와 조언: 이 효는 감응이 신체적인 부위를 넘어 마음(心)의 영역으로 들어선 단계입니다. 마음으로 느끼는 감응은 때로 결정하기 어렵고 생각이 이리저리 흔들릴(憧憧往來)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효는 ‘정(貞)’, 즉 올곧고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마음속으로 갈등하고 번민하더라도, 그 중심(貞)만 굳건히 지킨다면 결국 길(吉)하고 후회할 일이 없을(悔亡)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의 진실된 마음(爾思)은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진정으로 뜻이 맞는 친구나 동료(朋)들이 그의 생각을 믿고 따르게 될 것(從)**입니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 내면의 진실성과 올곧음이 관계의 핵심임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효입니다.
- 소상전 해설: “貞吉悔亡 未感害也 憧憧往來 光未大也” (정길회망은 해(害)로운 것에 감응(感)하지 않기(未) 때문이다. 동동왕래는 빛(光)이 아직(未) 크지(大) 않기 때문이다.) – 올곧음을 지켜 나쁜 감응에 빠지지 않기에 후회가 없으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아직 그 밝음(깨달음 또는 영향력)이 완전히 크지 않기 때문임을 설명합니다.
- 주역 입문 관점: 마음의 갈등과 번민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도 자신의 진실함과 올바른 원칙을 잃지 않는 것이다. 진심은 결국 통하며, 진정한 관계는 꾸밈없는 생각과 마음을 나눌 때 형성된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5. 구오(九五): 함기매(咸其脢) 무회(无悔)
- 원문: 九五 咸其脢 无悔 (구오 함기매 무회)
- 해석: “구오는 그 등심살(脢)⁵³에서 느끼니, 후회(悔)가 없다.”⁵⁴
- 위치와 상징: 상괘 태(兌☱)의 가운데 다섯 번째 효. **양효(⚊)**이며 양(陽)의 자리에 온 **군주의 자리(君位)**입니다. 괘 전체의 중심(中)이자 가장 존귀한 위치입니다. **중정(中正)**의 덕을 갖추었습니다. 등심살은 등(背)의 심장 가까이에 있는 부위로,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견고한 의지(意志)를 상징합니다.
- 의미와 조언: 감응이 등심살(脢), 즉 마음의 가장 깊은 곳, 흔들리지 않는 의지에서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이는 외부의 자극이나 피상적인 감정에 의해 쉽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깊은 내면과 신념에 따라 조용히, 그러나 굳건하게 감응하는 최고 경지의 모습입니다. 마치 깊은 호수처럼, 겉으로는 잔잔하지만 속으로는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는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君位), 경거망동하지 않고 자신의 중심(中正)을 지키며 감응합니다. 이처럼 **깊고 견고한 감응은 결코 경솔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므로 후회할 일이 없다(无悔)**는 것입니다. 이는 성숙하고 안정된 내면에서 비롯되는 감응의 힘을 보여주는 효입니다.
- 소상전 해설: “咸其脢 志末也” (함기매는 뜻(志)이 끝(末)⁵⁵에 있기 때문이다.) – 이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① 뜻(志)이 얕거나(末) 미미하여 크게 움직이지 않음. ② 뜻(志)이 몸의 말단(末, 발가락 등)이 아닌 깊은 곳(脢)에 있음. ③ (가장 유력) 감응하는 범위가 넓지 않고(末) 제한적이어서 후회가 없음. 어느 쪽이든, 구오의 감응이 피상적이거나 경솔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 주역 입문 관점: 진정한 강함은 요란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깊고 흔들리지 않는 내면에서 나온다.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 따라 깊이 감응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6. 상륙(上六): 함기보협설(咸其輔頰舌)
- 원문: 上六 咸其輔頰舌 (상륙 함기보협설)
- 해석: “상륙은 그 턱(輔)과 뺨(頰)과 혀(舌)⁵⁶에서 느낀다.”⁵⁷
- 위치와 상징: 맨 위 여섯 번째 효. 함괘의 가장 마지막 단계. 음(陰)의 자리에 음효(⚋)가 와서 자리는 바르지만(正), 이미 괘의 극(極)에 도달하여 감응의 실질적인 힘은 약해진 자리입니다. 입과 관련된 부위입니다.
- 의미와 조언: 감응이 말(言)을 하는 기관인 턱, 뺨, 혀에서만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이는 진실된 마음이나 깊은 감응 없이, 오직 입으로만(口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거나 관계를 맺으려는 피상적이고 공허한 소통을 상징합니다. 마치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행동은 따르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러한 말뿐인 감응은 결코 진정한 소통이나 관계 형성으로 이어질 수 없으며, 오히려 불신과 반감만 살 수 있습니다. 효사에는 길흉 판단이 없지만, 그 내용 자체가 부정적이고 경계해야 할 태도임을 암시합니다.
- 소상전 해설: “咸其輔頰舌 滕口說也” (함기보협설은 입(口)만 올려서(滕) 말(說)하는 것이다.)⁵⁸ – 실질적인 내용 없이 입만 살아서 떠드는 공허한 말솜씨를 의미합니다.
- 주역 입문 관점: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진심 없는 말이나 약속은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화려한 언변보다는 진솔한 마음과 행동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4부: 함괘(咸卦)의 종합적 의미와 현대적 적용
택산함괘는 젊은 남녀의 자연스러운 이끌림을 통해, 인간관계와 소통의 근본 원리로서 ‘감응(咸)’의 중요성과 그 올바른 길을 제시합니다. 입문서들의 관점을 종합하면, 함괘의 지혜는 다음과 같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 진심과 무심(無心)의 소통: 함괘는 모든 관계의 시작이 **사심 없는 순수한 마음(咸 = 感 – 心)**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계산적이거나 인위적인 접근은 진정한 감응을 방해합니다.
- 마음을 비우는 경청 (虛受人): 상대방의 마음을 얻고 진정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아집과 편견을 비우고(虛)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을 받아들이는(受人) 자세가 필요합니다. 경청과 공감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 올바름(貞)의 기반: 아무리 강한 이끌림이라도 올바른 도리와 원칙(貞)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부정한 관계나 잘못된 목적의 감응은 결국 해로울 뿐입니다.
- 감정 조절과 신중함: 감응의 초기 단계(初六, 六二, 九三)에서는 충동적인 행동을 경계하고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인 판단이 중요합니다.
- 내면의 진실성 (九四, 九五): 관계가 깊어질수록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보다 **내면의 진실함과 흔들리지 않는 중심(貞, 孚)**입니다. 진심은 결국 통하며, 깊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기반이 됩니다.
- 말보다 중요한 것 (上六): 화려한 말솜씨나 피상적인 소통(輔頰舌)은 진정한 감응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진솔한 마음과 행동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마음이 통합니다.
- 모든 관계의 시작점: 함괘는 남녀 관계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 친구, 동료, 스승과 제자, 리더와 구성원 등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과 발전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결론: 함괘, 마음을 열어 세상을 느끼는 법
주역 64괘 중 서른한 번째 괘이자 하경(下經)의 문을 여는 **택산함(澤山咸)**은 사람과 사람, 나아가 만물이 서로 ‘느끼고 응답하는(感應)’ 근본적인 원리를 탐구하는 아름답고도 심오한 괘입니다. 산 위의 연못처럼, 이 괘는 마음을 비우고(虛) 서로를 받아들일 때(受) 비로소 진정한 소통과 조화가 시작됨을 가르쳐줍니다.
함괘는 감응이 발가락 끝의 미미한 떨림(초륙)에서 시작하여, 장딴지의 충동(육이), 넓적다리의 맹목적인 따름(구삼), 마음의 번민과 진실(구사), 등판의 굳건한 의지(구오), 그리고 마침내 혀끝의 공허한 말(상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깊이와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어떤 감응이 진실되고 길하며, 어떤 감응이 위험하고 후회를 남기는지 분별하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핵심은 **’올곧음(貞)’**입니다. 아무리 강렬한 이끌림이라도 올바른 원칙 위에서 진실된 마음으로 이루어질 때만이 진정한 형통(亨)과 길함(吉)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함괘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느낌’과 ‘감응’ 속에 살고 있는가? 당신은 마음을 비우고 진심으로 타인과 세상을 느끼고 있는가? 당신의 관계는 올곧음 위에 서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며 함괘의 지혜를 실천할 때, 우리는 계산과 불신을 넘어 서로의 마음을 느끼고 진정으로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며 더 풍요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각주(Footnotes):
(각주 번호는 이전 답변들과 연속성을 가지도록 부여하겠습니다.)
⁶⁰⁷ 64괘(六十四卦): 주역의 본체를 이루는 64개의 상징 코드. 팔괘(八卦) 두 개를 위아래로 겹쳐 만들며, 각 괘는 6개의 효(爻)로 구성된다.
… (이전 각주들 생략) …
⁶²² 리괘(離卦): 주역 64괘의 서른 번째 괘이자 상경의 마지막 괘. 중화리(重火離). 밝음, 의존, 문명을 상징한다.
⁶²³ 서괘전(序卦傳): 주역의 10가지 부록인 십익(十翼) 중 하나. 64괘가 왜 현재와 같은 순서로 배열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⁶²⁴ 괘사(卦辭): 64괘 각각에 대해 그 괘 전체의 의미와 길흉을 설명하는 글. 괘명(卦名) 다음에 나온다.
⁶²⁵ 효사(爻辭): 64괘를 구성하는 총 384개의 효(爻) 각각에 대해 그 의미와 길흉, 처세의 조언을 설명하는 글.
⁶²⁶ 팔괘(八卦): 3개의 효(爻)로 이루어진 8개의 기본 괘. 건(☰), 태(☱), 리(☲), 진(☳), 손(☴), 감(☵), 간(☶), 곤(☷). 주역 64괘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다.
⁶²⁷ 상전(象傳): 주역의 본문(괘사, 효사)에 대한 해설을 담은 10개의 부록, 즉 ‘십익(十翼)’ 중 하나. 각 괘의 상하 팔괘 조합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설명하는 대산전(大象傳)과 각 효의 의미를 부연 설명하는 소상전(小象傳)으로 나뉜다. 공자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⁶²⁸ “山上有澤 咸 君子以虛受人”: 함괘의 대산전(大象傳) 구절.
⁶²⁹ “咸 亨 利貞 取女吉”: 함괘의 괘사(卦辭).
⁶³⁰ 형(亨): ‘형통할 형’. 일이 막힘없이 잘 풀리고 성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감응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므로 형통하다.
⁶³¹ 정(貞): ‘곧을 정’. 올곧음, 바름, 인내, 지조, 변치 않음. 함괘에서는 감응의 대상, 동기, 과정이 올바르고 진실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⁶³² 무(拇): ‘엄지손가락/발가락 무’. 여기서는 엄지발가락을 의미한다. 몸의 가장 아래 끝부분.
⁶³³ “咸其拇”: 함괘 초륙(初六) 효사. 길흉 판단 없이 현상만 묘사한다.
⁶³⁴ 소상전(小象傳): 십익(十翼) 중 상전(象傳)의 일부로, 각 효사(爻辭)에 대해 그 의미를 부연 설명하는 부분. 보통 “상왈(象曰)…”로 시작한다.
⁶³⁵ 비(腓): ‘장딴지 비’. 종아리 부분. 발보다 위에 있으며 움직임에 직접 관여한다.
⁶³⁶ “咸其腓 凶 居吉”: 함괘 육이(六二) 효사.
⁶³⁷ 중정(中正): 6개의 효위 중 하괘의 가운데인 2효와 상괘의 가운데인 5효를 ‘중(中)’이라 하고, 양의 자리에 양효가 오거나 음의 자리에 음효가 오는 것을 ‘정(正)’이라 한다. 함괘 육이는 음(陰)의 자리에 음효(⚋)가 왔으므로 ‘중정’의 덕을 갖춘 이상적인 효이다. 하지만 감응의 초기 단계이고 충동적으로 움직일 위험이 있다.
⁶³⁸ 고(股): ‘넓적다리 고’. 허벅지. 걷거나 움직이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부위.
⁶³⁹ 집(執): ‘잡을 집’. ‘잡다’, ‘고집하다’, ‘지키다’. 여기서는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집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隨): ‘따를 수’. ‘따르다’, ‘좇다’. 여기서는 감응하여 따라가는 대상을 의미한다.
⁶⁴⁰ 린(吝): ‘후회할 린’, ‘인색할 린’. ‘후회하다’, ‘인색하다’, ‘어렵다’. 주역에서는 ‘흉(凶)’보다는 가볍지만 부정적인 결과를 의미한다.
⁶⁴¹ “咸其股 執其隨 往吝”: 함괘 구삼(九三) 효사.
⁶⁴² 동동(憧憧): ‘그리워할 동’이 겹쳐진 말.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오락가락하는 모양.
⁶⁴³ “貞吉 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 함괘 구사(九四) 효사.
⁶⁴⁴ 매(脢): ‘등심 매’. 등의 살, 특히 등심 부위. 심장과 가까우면서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 부위로, 깊은 의지나 마음을 상징한다.
⁶⁴⁵ “咸其脢 无悔”: 함괘 구오(九五) 효사.
⁶⁴⁶ 말(末): ‘끝 말’. ‘끝’, ‘말단’, ‘표면’, ‘사소함’. 해석이 분분하여, ① 뜻이 얕거나 미미함, ② 뜻이 몸의 말단이 아닌 깊은 곳에 있음, ③ 감응의 범위가 넓지 않음 등으로 풀이된다.
⁶⁴⁷ 보(輔): ‘턱뼈 보’. 턱, 턱뼈. 협(頰): ‘뺨 협’. 뺨. 설(舌): ‘혀 설’. 혀. 모두 말을 하는 데 사용되는 입 주변의 부위.
⁶⁴⁸ “咸其輔頰舌”: 함괘 상륙(上六) 효사. 길흉 판단 없이 현상만 묘사하며, 부정적인 함의를 내포한다.
⁶⁴⁹ 등(滕): ‘오를 등’, ‘물솟을 등’. 여기서는 입을 위로 올려(滕口) 말만 번지르르하게 한다는 의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