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64괘 해설 [64]: 화수미제(火水未濟 ☲☵)

– 미완성의 길, 혼돈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다

서론: 완성을 넘어, ‘미완성(未濟)’이라는 영원한 시작점에 서다

주역(周易) 64괘¹ 탐험, 그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은 뜻밖에도 ‘완성’이 아닌 ‘미완성’입니다. 우리는 상경(上經)³⁰과 하경(下經)의 모든 변화를 거쳐, 예순세 번째 괘인 수화기제(水火旣濟)¹⁰⁰⁹에서 6개의 효(爻)가 모두 제자리를 찾은 ‘완벽한 완성’의 순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주역의 철학은 ‘완성’을 끝으로 보지 않습니다. ‘완성’은 곧 ‘정지’이며, ‘정지’는 ‘쇠퇴’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旣濟 卦辭: 初吉終亂).

이제 우리는 주역 64괘의 대미를 장식하는 예순네 번째 괘, **화수미제(火水未濟)**를 통해, 그 ‘완성(旣濟)’이 다시 ‘미완성(未濟)’으로 돌아가고, 그 ‘혼돈(混沌)’ 속에서 어떻게 ‘영원한 순환’과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지 그 궁극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미제(未濟)라는 이름은 **’아닐 미(未)’**와 **’건널 제(濟)’**가 합쳐진 말입니다. 이는 **’아직 강을 건너지 못했다’, ‘아직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완성’**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질서가 잡히지 않았으며,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은 상태를 상징합니다.

주역 괘의 순서를 설명하는 서괘전(序卦傳)¹⁰¹⁰에서는 “사물은 가히 다할 수 없으므로 기제괘 다음에 미제괘로 받으니, 이로써 마친다(物不可以窮也 故受之以未濟 終焉)”라고 하여, 우주와 인생의 변화는 결코 ‘완성(旣濟)’으로 ‘다할 수(窮)’ 없으며, ‘미완성(未濟)’이라는 영원한 과정 속에서 끝없이 순환한다는 심오한 철학을 담아 주역 전체를 마무리합니다.

따라서 미제괘는 주역에서 **’혼돈’, ‘무질서’, ‘불안정’**을 상징하는 괘처럼 보입니다. 괘의 구조는 기제괘와 정반대로, 불(火)은 위로만 타오르고 물(水)은 아래로만 흘러 서로 만나지 못하고 소통이 단절된 모습입니다. 또한 64괘 중 유일하게, **6개의 모든 효(爻)가 전부 제자리를 찾지 못한(不當位)**¹⁰¹¹ 극도의 ‘부조화’ 상태입니다.

하지만 주역은 이 ‘미완성의 혼돈’을 결코 ‘흉(凶)’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괘사는 오히려 ‘형통(亨)’을 선언합니다. 왜일까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잃었기에, 오히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可能性)’**이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미제괘는 절망의 괘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창조적 잠재력’**이 꿈틀대는 **’희망의 괘’**입니다.

이 괘는 우리에게 혼돈과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속에서 ‘신중하게(愼辨物)’ 질서를 찾아(居方)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라고 가르칩니다. ‘어린 여우가 강을 건너는(小狐汔濟)’ 괘사의 비유는,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으며 **성급함(濡其尾)**을 경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 글은 주역 입문서들의 보편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미제괘의 구조와 상징, 괘 전체의 의미를 담은 괘사(卦辭)¹⁰¹², 그리고 이 미완성의 혼돈 속에서 펼쳐지는 6단계의 상황과 그 속에서의 지혜와 경계를 보여주는 각 효사(爻辭)¹⁰¹³를 분석합니다.

미제괘의 여정은 **주역 64괘의 ‘끝’이 아니라, 다시 1번 건괘(乾卦)로 돌아가는 ‘영원한 시작’**의 고리이며, 삶이란 ‘완성’이 아닌 ‘과정’ 그 자체임을 깨닫는 숭고한 배움의 장이 될 것입니다.


제1부: 미제괘(未濟卦)의 구조와 상징 – 불과 물의 엇갈림, 완벽한 부조화 속의 잠재력

64괘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그 구조와 상징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미제괘는 그 구조 자체가 ‘미완성’과 ‘부조화’, 그리고 그 이면의 ‘무한한 가능성’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1. 팔괘(八卦)¹⁰¹⁴의 조합: 물(坎 ☵) 위에 불(離 ☲)

미제괘는 팔괘 중 물(Water) 또는 **험난함(險)**을 상징하는 감(坎 ☵) 괘가 하괘(下卦, 아래)에 놓이고, 불(火) 또는 **밝음(明)**을 상징하는 리(離 ☲) 괘가 상괘(上卦, 위)에 놓인 형태입니다. (※ 주의: 63번 수화기제(水火旣濟)괘와 상하괘 위치가 정반대입니다.)

  • 하괘 감(坎 ☵): (上⚋, 中⚊, 下⚋). 물(水), 험난함(險), 위험, 아래로만 흐르려는(潤下) 성질을 상징합니다. **내면의 ‘어려움’ 또는 ‘잠재력’**을 나타냅니다.
  • 상괘 리(離 ☲): (上⚊, 中⚋, 下⚊). 불(火), 밝음(明), 지성, 위로만 타오르려는(炎上) 성질을 상징합니다. **외부의 ‘밝음’ 또는 ‘혼란’**을 나타냅니다.
  • 조합의 의미 (火水未濟):험난한 물(坎) 위에 불(離)이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부조화’와 ‘단절’**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1. 불통(不通): 불(火)은 그 본성상 위로(上) 타오르려 하고, 물(水)은 그 본성상 아래로(下) 흐르려 합니다. 두 기운이 서로 등을 돌리고 멀어지는(違行) 형국입니다. (이는 12번 천지비(天地否)괘의 ‘天地不交’와 유사합니다.) 서로 만나 사귀고 조화를 이루어야 할(旣濟) 물과 불이, 서로 교류하지 못하고 각자의 길만 가니, 어떤 일도 이루어질 수 없는 **’미완성(未濟)’**의 상태입니다.
    2. 조리의 실패: 63번 기제괘가 ‘물(坎)이 불(離) 위에 있어’ 음식을 익히는 ‘완성된 조리(亨)’의 상이었다면, 미제괘는 ‘불(離)이 물(坎) 위에 있어’ **불은 물에 닿지 않고 물은 끓지 않는 ‘조리 실패’**의 상입니다.

2. 효(爻) 구조의 핵심: 모든 효가 제자리를 잃다 (六爻不當位)

미제괘의 가장 경이로운 특징은 6개의 효(爻) 구조(上九 ⚊, 六五 ⚋, 九四 ⚊ / 六三 ⚋, 九二 ⚊, 初六 ⚋)¹⁰¹⁵가 63번 기제괘와 정반대라는 점입니다.

  • 초륙(初六): 1효 (陽의 자리)에 음효(⚋)가 와서 부정(不正).
  • 구이(九二): 2효 (陰의 자리)에 양효(⚊)가 와서 부정(不正).
  • 육삼(六三): 3효 (陽의 자리)에 음효(⚋)가 와서 부정(不正).
  • 구사(九四): 4효 (陰의 자리)에 양효(⚊)가 와서 부정(不正).
  • 육오(六五): 5효 (陽의 자리)에 음효(⚋)가 와서 부정(不正).
  • 상구(上九): 6효 (陰의 자리)에 양효(⚊)가 와서 부정(不正).

이처럼 여섯 개의 모든 효가 각자 마땅히 있어야 할 제자리(當位)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는 주역 64괘 중에서 유일한 사례입니다. 이는 **완벽한 ‘무질서’, ‘완전한 불균형’,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극도의 혼돈’**을 상징합니다.

  • 그러나 이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 변화의 잠재력: 기제괘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자리(正)’에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변화할 동력이 없는 ‘정체(止)’ 상태였습니다. 반면 미제괘는 **모든 것이 ‘잘못된 자리(不正)’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효가 ‘제자리(正)’를 찾아가려는 ‘강력한 변화의 동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 음양의 호응: 또한, 미제괘는 여섯 효 모두가 서로 ‘정응(正應)’¹⁰¹⁶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初六-九四, 九二-六五, 六三-上九). 비록 자리는 어긋났지만, 모든 음(陰)과 양(陽)이 서로 짝을 이루어 강력하게 끌어당기고(應) 소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 결론: 즉, 미제괘는 겉모습은 ‘극도의 혼돈(不當位)’이지만, 그 속에는 ‘완벽한 조화의 가능성(正應)’을 품고 있는, 가장 역동적이고 희망적인 ‘태동(胎動)’의 괘입니다.

3. 괘의 모습(象): 불이 물 위에 있다, 신중하게 사물을 분별하다

주역 해설서인 ‘상전(象傳)’¹⁰¹⁷에서는 미제괘의 상하 팔괘 조합을 보고 그 상징적인 이미지를 설명합니다. 상전(대산전, 大象傳)의 설명은 이 ‘혼돈’의 시기에 군자가 취해야 할 핵심적인 자세를 보여줍니다.

**”火在水上 未濟 君子以愼辨物居方” (화재수상 미제 군자이신변물거방)**¹⁰¹⁸

  • 해석: “불(火)이 물(水) 위에(上) 있는(在) 것이 미제(未濟)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신중하게(愼) 사물(物)을 분별하고(辨) (올바른) 자리(方)¹⁰¹⁹에 머무르게(居) 한다.”
  • 의미: 불은 위에, 물은 아래에 있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 ‘미완성(未濟)’의 혼돈 상태를 보고, 군자(주역에서 이상적인 인간상)는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자신의 임무를 깨닫습니다.
    1. 신변물(愼辨物): ‘신중하게 사물을 분별한다.’ 이는 **상괘 리(離, 밝음)**의 덕을 본받는 것입니다. 혼돈 속일수록 감정적으로 휩쓸리지 말고, **밝은 지혜(明)**로써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제자리에 있고 무엇이 어긋났는지(物)**를 **신중하게(愼) 분별(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거방(居方): ‘자리에 머무르게 한다.’ 이는 **하괘 감(坎, 험난함/물)**의 덕을 본받는 것입니다. (※ 해석 수정: 艮=止=居로 연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우나, 여기서는 坎/離의 조합을 통해 ‘질서를 잡는다’는 의미로 확장됨. 혹은 64괘의 마지막으로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는 의미.) 분별(辨)이 끝났다면, **각 사물이 마땅히 있어야 할 ‘올바른 자리(方)’**에 머무르도록(居) 질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 핵심 메시지: 이는 21번 서합괘(噬嗑)의 ‘명벌칙법(明罰勅法)’, 37번 가인괘(家人)의 ‘정위(正位)’와도 통하는 메시지입니다. 즉, **미제(未濟)의 혼돈은 ‘종말’이 아니라, ‘올바른 분별(辨)’과 ‘질서 회복(居方)’을 통해 ‘완성(旣濟)’으로 나아가야 할 ‘과업의 시작’**임을 강조합니다.

제2부: 괘사(卦辭) – 미제괘 전체의 의미: “亨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

괘사(卦辭)는 괘 전체에 대한 설명과 길흉 판단입니다. 미제괘의 괘사는 ‘미완성’ 속에 담긴 ‘형통함’과, 그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성급함’의 위험을 ‘어린 여우’의 비유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未濟 亨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

**(미제 형 소호흘제 유기미 무유리)**¹⁰²⁰

  • 해석: “미제(未濟)는 형통(亨)¹⁰²¹하다. 어린 여우(小狐)¹⁰²²가 강을 거의(汔)¹⁰²³ 건넜다가(濟) 그 꼬리(尾)를 적시니(濡), 이로운(利) 바가 전혀(攸) 없다(无).”
  • 의미:
    1. 형(亨): 형통하다. 괘사는 먼저 ‘미완성(未濟)’ 그 자체가 **’형통’**하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완성(旣濟)’이 정체와 쇠퇴(終亂)를 의미하는 것과 달리, ‘미완성(未濟)’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변화의 동력(正應)’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돈은 곧 창조의 전 단계입니다.
    2. 소호흘제 유기미(小狐汔濟 濡其尾): 어린 여우가 거의 건넜다가 꼬리를 적신다. 이것이 ‘미완성’의 시대에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입니다.
      • 어린 여우(小狐): ‘어리다(小)’는 것은 아직 경험과 지혜가 부족함을, ‘여우(狐)’는 의심이 많고 조급함을 상징합니다.
      • 거의 건넜다가(汔濟): 그는 험난한 강(坎)을 거의 다 건너는 데 성공했습니다.
      • 꼬리를 적신다(濡其尾): 하지만 마지막 순간의 방심이나 성급함(急) 때문에, 가장 약한 부분(尾)이 물에 젖어버립니다. 이는 ① 일이 다 된 것처럼 보였으나 마지막 사소한 실수로 일을 그르침, ② 혹은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미제) 성급하게 나아가다가(征) 실패함을 상징합니다.
    3. 무유리(无攸利): 이로운 바가 전혀 없다. 꼬리가 젖는 것은 사소해 보일 수 있으나, 얼음장 같은 강물(坎) 속에서 젖은 꼬리는 여우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즉, 이 성급한 ‘미완성의 성공’은 결국 아무런 이로움도 가져다주지 못하고 실패로 귀결된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4. 핵심 메시지: 미제괘는 ‘형통(亨)’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대이지만, 그 **혼돈 속에서 성급하게(小狐) 행동하면 반드시 실패(濡其尾)**한다. 따라서 **’신중함(愼)’과 ‘때를 기다림(待時)’**이야말로 이 시대를 헤쳐나가는 유일한 길임을 역설합니다. (이는 63번 기제괘 초구 “曳其輪 濡其尾 无咎”와 대비됩니다. 기제는 ‘이미 건넌 후’의 신중함이라 ‘무구’이지만, 미제는 ‘건너지 못했는데’ 성급하니 ‘무유리’입니다.)

이 괘사는 ‘미완성’의 가능성을 믿되, 결코 ‘성급함’에 빠지지 말라는 주역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제3부: 효사(爻辭) – 6단계 변화: ‘미완성(未濟)’ 속 혼돈과 질서 찾기

이제 미제괘의 6개의 효(爻)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각 효는 6효 모두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不當位) 이 ‘완벽한 혼돈’ 속에서, 각 주체들이 어떻게 자신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하며 질서를 찾아가려 노력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모든 효가 ‘정응(正應)’ 관계에 있어, 서로를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갈등’과 ‘조화’의 가능성이 공존합니다.

1. 초륙(初六): 濡其尾 吝(유기미 린)

  • 원문: 初六 濡其尾 吝 (초륙 유기미 린)
  • 해석: “초륙은 그 꼬리(尾)를 적시니, 후회(吝)¹⁰²¹스럽다.”¹⁰²²
  • 위치와 상징: 맨 아래 첫 번째 효. 미제괘의 시작. **음효(⚋)**이며 양(陽)의 자리에 와서 부당위(不當위)합니다. ‘험난함(坎)’의 가장 아래에 있어 힘이 약하고 어둡습니다. 괘사의 **’어린 여우(小狐)’**에 해당합니다.
  • 의미와 조언: 괘사의 경고가 시작부터 현실화되었습니다. 그는 힘도 없고(陰) 경험도 부족하면서(初), 이 험난한 강(坎)을 성급하게 건너려다(未濟) 시작부터 꼬리를 적시고(濡其尾)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는 **때와 분수를 모르고 무모하게 행동(妄動)**한 결과입니다. 그 결과는 비록 완전한 파멸(凶)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부끄럽고 후회스러운(吝) 상태입니다. 이는 **혼돈의 시기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성급함’과 ‘무지(不知)’**임을 보여주는 첫 번째 경고입니다.
  • 소상전(小象傳) 해설: “濡其尾 亦不知極也” (유기미는 또한(亦) (자신의) 한계(極)를 알지(知) 못하기(不) 때문이다.)¹⁰²³ – 꼬리를 적신 것은, 험난함의 깊이나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모르고 덤벼들었기 때문임을 지적합니다.
  • 주역 입문 관점: ‘첫 단추’가 중요하다.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시작부터 성급하게 행동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과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 준비 없는 도전은 후회(吝)를 남길 뿐이다.

2. 구이(九二): 曳其輪 貞吉(예기륜 정길)

  • 원문: 九二 曳其輪 貞吉 (구이 예기륜 정길)
  • 해석: “구이는 그 수레바퀴(輪)를 끌어당기니(曳)¹⁰²⁴, 올곧음(貞)¹⁰²⁵을 지키면 길(吉)하다.”¹⁰²⁶
  • 위치와 상징: 하괘 감괘(坎☵)의 가운데 두 번째 효. **양효(⚊)**이며 음(陰)의 자리에 와서 부당위(不當위)하지만, **하괘의 중(中)**을 얻었습니다. 험난함(坎) 속에 갇혔지만, 강건함(陽)과 중용(中)의 덕을 갖춘 핵심 인물입니다. 위의 군주(六五)와 **정응(正應)**¹⁰²⁷ 관계입니다.
  • 의미와 조언: 이 효는 63번 기제괘(旣濟卦)의 초구 효사와 글자가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 수정: 63번 기제괘 초구는 “曳其輪 濡其尾…”입니다. 64번 미제괘 구이는 기제 초구와 ‘曳其輪’은 같으나 ‘濡其尾’가 빠지고 ‘貞吉’이 붙었습니다.)
    • (※ 수정된 미제괘 구이 효사 분석): 이 효는 ‘미완성’의 혼돈 속에서 가장 현명한 처신을 보여줍니다. 그는 **강한 힘(陽)과 중심(中)**을 가졌지만, 지금이 **’아직 때가 아님(未濟)’**을 정확히 알고 섣불리 나아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레바퀴를 뒤로 끌어당기듯(曳其輪)’ 자신의 힘을 제어하고 멈추어 때를 기다립니다. 초륙(初六)이 성급함(濡其尾)으로 흉함을 자초한 것과 정반대입니다. 그는 이 ‘멈춤’ 속에서 ‘올곧음(貞)’, 즉 자신의 신념과 짝(六五)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키니, 마침내 길(吉)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는 혼돈의 시기일수록 ‘성급함’이 아닌 ‘신중한 인내(貞)’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효입니다.
  • 소상전 해설: “九二貞吉 中以行正也” (구이정길은 중(中)으로써 올바름(正)을 행(行)하기 때문이다.) – 그가 길한 이유는, 비록 자리는 부당위하나(不正), 중(中)의 덕을 바탕으로 올바른(正) 도리를 행(行)하기 때문임을 설명합니다.
  • 주역 입문 관점: 때를 아는 것이 힘이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섣불리 행동하는 것보다, 한발 물러나(曳其輪) 자신의 중심을 잡고(中) 원칙을 지키며(貞)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전략적 멈춤’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3. 육삼(六三): 未濟 征凶 利涉大川(미제 정흉 리섭대천)

  • 원문: 六三 未濟 征凶 利涉大川 (육삼 미제 정흉 리섭대천)
  • 해석: “육삼은 (아직) 건너지(濟) 못했으니(未), (억지로) 나아가면(征)¹⁰²⁸ 흉(凶)하다. (그러나) 큰 내(大川)¹⁰²⁹를 건너는(涉) 것이 이롭다(利).”¹⁰³⁰
  • 위치와 상징: 하괘 감괘(坎☵)의 맨 위 세 번째 효. **음효(⚋)**이며 양(陽)의 자리에 와서 부당위(不當위)하고 부중(不中)한 매우 불안정한 자리입니다. ‘험난함(坎)’의 극(極)에 달해,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위치입니다.
  • 의미와 조언: 이 효는 주역 64괘 전체에서도 가장 해석이 난해하고 모순적으로 보이는 효입니다. **”나아가면 흉하다(征凶)”**고 경고하면서, 동시에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利涉大川)”**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 이 모순의 의미: 이는 ‘어떻게’ 나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정(征)’은 **’공격적인 전진’, ‘정벌’**을 의미합니다. 힘도 없고(陰) 자리도 부당한(不當位) 육삼이 ‘혼자 힘으로’ 험난함(坎)을 억지로 뚫고 나아가려(征) 하면 **반드시 흉(凶)**합니다.
    • 리섭대천(利涉大川)의 조건: 하지만 그가 ‘큰 내(坎)’를 건너는 것이 이로운(利) 유일한 방법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는 상괘의 **상구(上九)**라는 **강력한 ‘정응(正應)’**¹⁰³¹의 짝이 있습니다. 즉,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윗사람(上九)의 도움과 지혜를 받아 함께 이 큰 어려움(大川)을 건너려 한다면, 그것은 이롭다는 것입니다. (혹은, 험난함(坎)의 극에 달했으니, 이제는 윗 괘(離)의 밝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유일한 살길이라는 의미)
    • 결론: ‘독단적인 모험(征)’은 흉(凶)하지만, ‘올바른 연대(應)를 통한 돌파(涉)’는 이롭다는 심오한 전략적 지침입니다.
  • 소상전 해설: “未濟征凶 位不當也” (미제정흉은 자리(位)가 부당(不當)하기 때문이다.) – 섣불리 나아가면 흉한 것은 그 자리가 불안정하고 부당하기 때문임을 지적합니다.
  • 주역 입문 관점: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라.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불리한 상황에서는 독단적인 행동(征)을 삼가고, 반드시 자신을 도와줄 조력자(應)와 연대하여 함께 문제를 헤쳐나가야(涉) 한다. ‘협력’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4. 구사(九四): 貞吉 悔亡 震用伐鬼方 三年有賞于大國(정길 회망 진용벌귀방 삼년유상우대국)

  • 원문: 九四 貞吉 悔亡 震用伐鬼方 三年有賞于大國 (구사 정길 회망 진용벌귀방 삼년유상우대국)
  • 해석: “구사는 올곧음(貞)을 지키니 길(吉)하고 후회(悔)¹⁰³²가 사라진다(亡). 우레(震)¹⁰³³처럼 (힘을) 써서(用) 귀방(鬼方)¹⁰³⁴을 정벌(伐)하여, 삼 년(三年)¹⁰³⁵ 만에 큰 나라(大國)로부터 상(賞)을 받는다.”¹⁰³⁶
  • 위치와 상징: 상괘 리(離☲)의 맨 아래 네 번째 효. **양효(⚊)**이며 음(陰)의 자리에 와서 부당위(不當위)하지만, 하괘(험난함)를 벗어나 상괘(밝음)로 진입한, 강력한 힘과 의지를 가진 자리입니다. 미완성(未濟)의 혼돈을 바로잡는 실질적인 행동가입니다.
  • 의미와 조언: 이 효는 63번 기제괘(旣濟卦)의 구삼 효사와 글자가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 수정: 63번 기제괘 구삼은 “高宗伐鬼方…”입니다. 64번 미제괘 구사는 63번 구삼과 ‘高宗’이 ‘震’으로 바뀐 점 외에는 거의 동일합니다.)
    • (※ 수정된 미제괘 구사 효사 분석): 이 효는 **’미완성(未濟)’의 혼돈을 종식시키기 위한 ‘위대한 투쟁’**을 보여줍니다.
      • 정길 회망(貞吉 悔亡): 그는 올곧음(貞), 즉 **혼돈을 바로잡겠다는 ‘정의로운 명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길(吉)하고 후회가 없습니다.
      • 진용벌귀방(震用伐鬼方): 그는 **우레(震)**와 같은 강력한 힘으로, **혼돈의 근원(鬼方, 이질적인 세력, 낡은 폐단)**을 **과감하게 정벌(伐)**합니다.
      • 삼년유상(三年有賞): 이 투쟁은 ‘3년’이라는 매우 길고 어려운 과정이지만, 마침내 **승리하여 큰 보상(賞)과 인정(大國)**을 받게 됩니다.
    • 결론: 이는 ‘미완성(未濟)’의 시대를 끝내고 ‘완성(旣濟)’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올곧음(貞)’을 바탕으로 한 ‘강력하고(震) 지속적인(三年) 투쟁’이 반드시 필요함을 보여주는 효입니다. 괘사의 ‘신중함(小狐)’과는 다른, **’행동해야 할 때(時)’**를 만난 것입니다.
  • 소상전 해설: “貞吉悔亡 志行也” (정길회망은 뜻(志)을 행(行)하기 때문이다.) – 올곧음을 지켜 길한 것은, 혼돈을 바로잡으려는 숭고한 뜻(志)을 마침내 실천(行)에 옮겼기 때문임을 설명합니다.
  • 주역 입문 관점: 인내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혼돈을 끝내기 위해서는 때로 ‘고통스러운 투쟁’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단, 그 행동은 반드시 ‘올바른 명분(貞)’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오랜 시간(三年)’의 노력을 각오해야 한다. ‘정의로운 투쟁’의 가치를 보여준다.

5. 육오(六五): 貞吉 无悔 君子之光 有孚吉(정길 무회 군자지광 유부길)

  • 원문: 六五 貞吉 无悔 君子之光 有孚吉 (육오 정길 무회 군자지광 유부길)
  • 해석: “육오는 올곧음(貞)을 지키니 길(吉)하고 후회(悔)가 없다. 군자(君子)의 빛(光)¹⁰³⁷이니, 믿음(孚)¹⁰³⁸이 있으면 길(吉)하다.”¹⁰³⁹
  • 위치와 상징: 상괘 리(離☲)의 가운데 다섯 번째 효. **임금의 자리(君位)**이며, **음효(⚋)**가 양(陽)의 자리에 와서 부당위(不當위)하지만 괘 전체의 **중심(中)**을 얻었습니다. 상괘(밝음)의 주체로서, 겸허하고(陰) 지혜로우며(明) 중용(中)을 갖춘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입니다. 아래의 중정한 신하(九二)와 **정응(正應)**¹⁰⁴⁰ 관계입니다.
  • 의미와 조언: 이 효는 63번 기제괘(旣濟卦)의 육오 효사와 글자가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 수정: 63번 기제괘 육오는 “東鄰殺牛…”입니다. 64번 미제괘 육오는 63번 육오와 다릅니다. 이 효사는 64번 미제괘 고유의 것입니다.)
    • (※ 수정된 미제괘 육오 효사 분석): 이 효는 ‘미완성(未濟)’의 혼돈을 수습하는 가장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입니다.
      • 정길 무회(貞吉 无悔): 그는 비록 자리는 부당위하지만(陰居陽位), **올곧음(貞)**을 굳건히 지키고 **중용(中)**의 덕을 발휘하여 **길(吉)**함에 이르고 후회가 없습니다.
      • 군자지광(君子之光): 그는 ‘밝음(離)’의 중심에 위치한 군주입니다. 그는 스스로 빛나는 ‘군자의 빛(光)’, 즉 **지혜와 덕(德)**을 갖추고 있습니다.
      • 유부길(有孚吉): 그는 이 지혜와 덕을 바탕으로 **아래의 능력 있는 신하(九二)를 전적으로 ‘신뢰(孚)’**하고 일을 맡깁니다. (또한 아랫사람들도 그를 신뢰합니다.) 이 **’상호 신뢰(有孚)’**야말로 혼돈의 시대를 극복하고 길(吉)함에 이르는 핵심입니다.
    • 결론: 이는 **혼돈의 시대일수록 리더는 강압적인 힘(陽)이 아니라, 오히려 ‘겸허함(陰)’, ‘밝은 지혜(離)’, ‘굳건한 올곧음(貞)’, 그리고 ‘인재에 대한 깊은 신뢰(孚)’**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함을 보여주는 효입니다. (이는 구사(九四)의 ‘투쟁’과 대비되는 ‘통합’의 리더십입니다.)
  • 소상전 해설: “君子之光 其暉吉也” (군자지광은 그 빛(暉)이 길(吉)한 것이다.) – 군자의 밝은 덕과 지혜의 빛이 널리 퍼져 길함을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 주역 입문 관점: 위기일수록 ‘신뢰’가 중요하다. 리더는 흔들리지 않는 원칙(貞)과 지혜(光)를 보여주어야 하며, 무엇보다 능력 있는 구성원들을 진심으로 ‘신뢰(孚)’하고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신뢰 기반의 리더십’이 혼돈을 극복하는 열쇠다.

6. 상구(上九): 유부우음주(有孚于飲酒) 무구(无咎) 유기수(濡其首) 유부(有孚) 실시(失是)

  • 원문: 上九 有孚于飲酒 无咎 濡其首 有孚失是 (상구 유부우음주 무구 유기수 유부 실시)
  • 해석: “상구는 믿음(孚)을 가지고 술을 마시는(飲酒) 데는 허물(咎)이 없다. (그러나) 그 머리(首)를 적시면(濡), (비록) 믿음(孚)이 있더라도 이(是)¹⁰⁴¹ 올바름을 잃는다(失).”¹⁰⁴²
  • 위치와 상징: 맨 위 여섯 번째 효. 미제괘의 가장 마지막 단계. **양효(⚊)**이며 음(陰)의 자리에 와서 부당위(不當위)하며, **괘의 극(極)**에 도달했습니다. ‘미완성’이 끝나고 ‘완성(기제)’으로 나아가려는 마지막 관문입니다.
  • 의미와 조언: 이 효는 63번 기제괘(旣濟卦)의 상륙 효사와 글자가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 수정: 63번 기제괘 상륙은 “濡其首 厲”입니다. 64번 미제괘 상구는 63번 상륙과 ‘유부우음주 무구’ 부분이 추가되고 ‘려(厲)’가 ‘유부실시’로 바뀌는 등, 매우 유사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 (※ 수정된 미제괘 상구 효사 분석): 이 효는 ‘미완성(未濟)’의 시대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마침내 ‘완성(旣濟)’의 축배를 드는 순간을 묘사합니다.
      • 유부우음주 무구(有孚于飲酒 无咎): 오랜 고난(坎)과 투쟁(震, 九四) 끝에 마침내 성공하여, 서로 ‘믿음(孚)’을 확인하며 함께 ‘술을 마시고(飲酒)’ 기쁨을 나누는 것은 허물이 없습니다(无咎).
      • 유기수 유부실시(濡其首 有孚失是): 그러나! 바로 이 ‘완성’의 순간, 63번 기제괘의 마지막 경고가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만약 이 **승리의 기쁨에 취해 ‘머리까지 젖을(濡其首)’ 정도로 ‘자만’하고 ‘방심’**한다면, 비록 그가 지금까지 ‘믿음(孚)’을 지켜왔다 할지라도, 그 ‘올바름(是)’을 잃어버리게(失)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 결론: 이는 주역 64괘의 최종적인, 그리고 가장 강력한 경고입니다. ‘미완성(未濟)’을 ‘완성(旣濟)’으로 이끄는 것은 위대한 성공이지만, 그 ‘완성’에 안주하는 순간(濡其首), 당신은 다시 ‘미완성(未濟)’의 혼돈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 소상전 해설: “飲酒濡首 亦不知節也” (음주유수는 또한(亦) 절제(節)를 알지(知) 못하기(不) 때문이다.) – 술에 취해 머리까지 적시는 것은, 60번 절괘(節卦)에서 배운 ‘절제’의 미덕을 잊어버린, 도를 넘은 행동임을 지적합니다.
  • 주역 입문 관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그리고 ‘끝난 후에도 끝난 게 아니다.’ 성공의 축배는 즐기되, 결코 자만하거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 성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절제’와 ‘경계’의 시작일 뿐이다. ‘영원한 미완성’ 속에서 ‘끊임없이 정진하라’는 것이 주역의 마지막 가르침이다.

제4부: 미제괘(未濟卦)의 종합적 의미와 현대적 적용

화수미제괘는 불과 물이 엇갈리고 6효가 모두 제자리를 잃은 ‘완벽한 혼돈’의 모습을 통해,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과 ‘새로운 시작’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보여줍니다. 입문서들의 관점을 종합하면, 미제괘의 지혜는 다음과 같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영역(개인의 혼란기, 기업의 혁신, 사회 변혁기 등)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1. 혼돈은 기회다 (亨): 미제괘는 ‘미완성’과 ‘혼돈’이 ‘형통(亨)’의 잠재력을 가진 시기임을 가르칩니다. 모든 것이 어긋나 있기에, 모든 것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습니다. 실패나 혼란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2. 성급함은 금물이다 (小狐濡尾): 혼돈 속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성급함’입니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愼辨物)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채(未濟) 섣불리 행동하면, ‘어린 여우’처럼 마지막 순간에 실패(无攸利)합니다.
  3. 신중한 분별과 질서 확립 (愼辨物居方): 이 시기 리더의 역할은 ‘신중하게 분별하고(愼辨)’ ‘각자의 자리를 잡아주는(居方)’ 것입니다. 혼란 속에서 원칙을 세우고 질서를 회복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4. 때를 아는 지혜 (曳其輪 貞吉): 혼돈의 시기에는 ‘나아감(征)’보다 ‘멈춤(止)’이 현명할 수 있습니다. 63번 기제괘 구삼(高宗伐鬼方)과 64번 미제괘 구사(震用伐鬼方)가 ‘투쟁’을 말하는 것과 달리(※ 수정: 기제 구삼과 미제 구사가 ‘벌귀방’을 말함), 미제괘의 중심(구이)은 ‘바퀴를 끄는’ 신중함을 보입니다. **때에 맞는 행동(時中)**이 중요합니다.
  5. 신뢰 기반의 리더십 (君子之光 有孚吉): 혼돈 속에서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힘은 ‘강압’이 아니라 ‘신뢰(孚)’입니다. 리더는 ‘밝은 덕(光)’과 ‘겸허함(陰)’, 그리고 ‘진실함(孚)’으로 구성원들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육오).
  6. 연대와 협력 (利涉大川): 혼자서는 험난한 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자신의 부족함(陰)을 인정하고, 뜻이 맞는 강력한 조력자(陽)와 연대(應)하여 함께 위기를 극복해야 합니다(육삼).
  7. 영원한 경계 (濡其首 凶): 주역의 마지막 가르침입니다. 설령 ‘미완성’을 ‘완성’으로 이끌었더라도, 그 성공에 안주하는 순간(濡其首) 모든 것은 다시 ‘무(無)’로 돌아갑니다. 삶은 ‘영원한 미제(未濟)’의 과정이며, ‘절제(節)’와 ‘경계(戒)’는 영원히 지속되어야 합니다.

결론: 미제, 끝이 아닌 영원한 시작을 향한 발걸음

주역 64괘의 장대한 여정은, 쉰네 번째 괘인 **화수미제(火水未濟)**라는 **’위대한 미완성’**으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이는 결코 비관적인 결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희망적이고 역동적인 ‘새로운 시작’**의 선언입니다.

불과 물이 엇갈리고 모든 효가 제자리를 잃어버린 ‘완벽한 혼돈(未濟)’ 속에서, 주역은 ‘형통(亨)’의 가능성을 봅니다. 모든 것이 어긋났기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과 **강력한 ‘변화의 동력(正應)’**이 살아 숨 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혼돈의 강을 건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성급한 여우(초륙)처럼 실패할 수도 있고, 멈추어 때를 기다려야(구이) 할 때도 있으며, 혼자서는 안 되고 함께(육삼) 건너야 합니다. 때로는 정의로운 투쟁(구사)이 필요하고, 겸허한 리더의 신뢰(육오)가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강을 다 건넜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상구), ‘다 이루었다’는 자만심(濡其首)에 빠지면 모든 것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미제(未濟)’는 주역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자 숙제입니다. 그것은 삶이란 ‘완성(旣濟)’이라는 하나의 점이 아니라, ‘미완성(未濟)’ 속에서 끊임없이 조화를 추구하며 나아가는 ‘과정(道)’ 그 자체임을 가르쳐줍니다.

결국 주역 64괘는 닫힌 원(圓)이 아니라, **64번 미제(未濟)에서 다시 1번 건(乾)괘의 ‘창조적 시작’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나선(螺旋)’**을 그립니다. 어둠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새벽(復)이 오듯, 혼돈(未濟)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새로운 질서(乾)를 향한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주역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우리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습니다. 신중하게(愼), 그러나 희망을 가지고(亨), 꼬리가 아닌 머리를 적시지 않도록(勿濡首) 경계하며, 우리 앞에 놓인 ‘미완성의 강’을 건너갈 첫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입니다.


각주(Footnotes):

(각주 번호는 이전 답변들과 연속성을 가지도록 부여하겠습니다.)

⁶⁶⁰ 64괘(六十四卦): 주역의 본체를 이루는 64개의 상징 코드. 팔괘(八卦) 두 개를 위아래로 겹쳐 만들며, 각 괘는 6개의 효(爻)로 구성된다.

… (이전 각주들 생략) …

¹⁰⁰⁹ 기제괘(旣濟卦): 주역 64괘의 예순세 번째 괘. 수화기제(水火旣濟). 완성, 성공, 완벽한 조화를 상징하나, 그 끝은 혼란(終亂)임을 경고한다.

¹⁰¹⁰ 서괘전(序卦傳): 주역의 10가지 부록인 십익(十翼) 중 하나. 64괘가 왜 현재와 같은 순서로 배열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窮’은 ‘다하다’, ‘궁극’. ‘終焉’은 ‘이로써 마친다’.

¹⁰¹¹ 6효 부당위(六爻不當位): 주역에서 1, 3, 5효는 양(陽)의 자리, 2, 4, 6효는 음(陰)의 자리이다. 미제괘는 이 모든 자리에 반대되는 성질의 효(1·3·5효에 음효, 2·4·6효에 양효)가 위치하여, 6효 모두가 ‘부당위(不當位)’ 또는 ‘부정(不正)’이다.

¹⁰¹² 괘사(卦辭): 64괘 각각에 대해 그 괘 전체의 의미와 길흉을 설명하는 글. 괘명(卦名) 다음에 나온다.

¹⁰¹³ 효사(爻辭): 64괘를 구성하는 총 384개의 효(爻) 각각에 대해 그 의미와 길흉, 처세의 조언을 설명하는 글.

¹⁰¹⁴ 팔괘(八卦): 3개의 효(爻)로 이루어진 8개의 기본 괘. 건(☰), 태(☱), 리(☲), 진(☳), 손(☴), 감(☵), 간(☶), 곤(☷). 주역 64괘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다.

¹⁰¹⁵ 효(爻) 구조: 상괘 離(☲ ⚊⚋⚊), 하괘 坎(☵ ⚋⚊⚋). 따라서 未濟(☲☵)의 효 구조는 (上九 ⚊, 六五 ⚋, 九四 ⚊ / 六三 ⚋, 九二 ⚊, 初六 ⚋)가 맞다.

¹⁰¹⁶ 정응(正應): 6효 괘에서 하괘와 상괘의 같은 위치(1-4, 2-5, 3-6)에 있는 효들이 서로 음양이 다를 경우, 서로 정식으로 호응(呼應)하는 짝 관계라고 본다. 미제괘는 초륙(陰)-구사(陽), 구이(陽)-육오(陰), 육삼(陰)-상구(陽)로 6효 모두가 완벽하게 정응 관계를 이룬다. 이는 ‘부당위’라는 혼돈 속에서도 강력한 ‘결합의 가능성’을 내포함을 의미한다.

¹⁰¹⁷ 상전(象傳): 주역의 본문(괘사, 효사)에 대한 해설을 담은 10개의 부록, 즉 ‘십익(十翼)’ 중 하나.

¹⁰¹⁸ “火在水上 未濟 君子以愼辨物居方”: 미제괘의 대산전(大象傳) 구절.

¹⁰¹⁹ 방(方): ‘모 방’. ‘방향’, ‘방법’, ‘장소’, ‘도리’. ‘거방(居方)’은 ‘각각의 사물을 올바른 자리에 머무르게 한다’, 즉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의미이다.

¹⁰²⁰ “未濟 亨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 미제괘의 괘사(卦辭).

¹⁰²¹ 형(亨): ‘형통할 형’. 일이 막힘없이 잘 풀리고 성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제괘는 ‘가능성’으로서의 형통이다.

¹⁰²² 소호(小狐): ‘작을 소(小)’에 ‘여우 호(狐)’. ‘어린 여우’.

¹⁰²³ 흘(汔): ‘거의 흘’. ‘거의’, ‘~에 가깝다’. ‘흘제(汔濟)’는 ‘거의 다 건넜다’.

¹⁰²¹ 린(吝): ‘후회할 린’, ‘인색할 린’. ‘후회하다’, ‘인색하다’, ‘어렵다’. 주역에서는 ‘흉(凶)’보다는 가볍지만 부정적인 결과.

¹⁰²² “濡其尾 吝”: 미제괘 초륙(初六) 효사.

¹⁰²³ 소상전(小象傳): 십익(十翼) 중 상전(象傳)의 일부. ‘極’은 ‘다하다’, ‘한계’, ‘궁극’.

¹⁰²⁴ 예(曳): ‘끌 예’. ‘끌다’, ‘당기다’. ‘예기륜(曳其輪)’은 ‘그 수레바퀴를 끌어당기다'(급히 나아가지 못하게).

¹⁰²⁵ 정(貞): ‘곧을 정’. 올곧음, 바름, 인내, 지조. 여기서는 ‘변치 않는 굳건한 인내’를 강조한다.

¹⁰²⁶ “曳其輪 貞吉”: 미제괘 구이(九二) 효사.

¹⁰²⁷ 정응(正應): 미제괘에서 구이는 하괘의 중심(中)이고 양(陽)이며, 상괘의 중심(中)이자 음(陰)인 육오와 양-음으로 정응 관계를 이룬다. 이상적인 군주와 신하의 관계이다.

¹⁰²⁸ 정(征): ‘칠 정’. ‘가다’, ‘정벌하다’, ‘적극적으로 나아가다’.

¹⁰²⁹ 대천(大川): ‘큰 내’ 또는 ‘큰 강’. 주역에서 종종 ‘건너기 어려운 험난함’이나 ‘중대한 과업’을 상징. 미제괘에서는 하괘 감(坎)이 상징하는 험난함 그 자체.

¹⁰³⁰ “未濟 征凶 利涉大川”: 미제괘 육삼(六三) 효사.

¹⁰³¹ 정응(正應): 미제괘에서 육삼은 하괘의 세 번째 효이고 음(陰)이며, 상괘의 세 번째 효(上九)이자 양(陽)과 음-양으로 정응 관계를 이룬다.

¹⁰³² 회(悔): ‘뉘우칠 회’. ‘후회하다’. ‘회망(悔亡)’은 후회가 사라짐.

¹⁰³³ 진(震): ‘우레 진(震)’. 여기서는 ‘우레’처럼 힘차게, ‘진동시키며’라는 동사적 의미.

¹⁰³⁴ 귀방(鬼方): 고대 중국 북서쪽에 있던 이민족. 은나라 고종(高宗)이 3년 만에 정벌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는 ‘이질적인 세력’, ‘혼돈의 근원’, ‘오래된 폐단’을 상징한다. (63번 기제괘 구삼 효사 참조)

¹⁰³⁵ 삼년(三年): ‘석 삼(三)’에 ‘해 년(年)’. ‘3년’. 구체적인 기간이라기보다 ‘매우 오랜 시간’의 꾸준한 노력을 상징.

¹⁰³⁶ “貞吉 悔亡 震用伐鬼方 三年有賞于大國”: 미제괘 구사(九四) 효사.

¹⁰³⁷ 광(光): ‘빛 광’. ‘빛’, ‘영광’, ‘지혜’. ‘군자지광(君子之光)’은 군자가 가진 내면의 덕과 지혜의 빛.

¹⁰³⁸ 부(孚): ‘믿음 부’. ‘믿음’, ‘미더움’, ‘진실함’.

¹⁰³⁹ “貞吉 无悔 君子之光 有孚吉”: 미제괘 육오(六五) 효사.

¹⁰⁴⁰ 정응(正應): 미제괘에서 육오는 상괘의 중심(中)이고 음(陰)이며, 하괘의 중심(中)이자 양(陽)인 구이와 음-양으로 정응 관계를 이룬다. (본문 수정 완료)

¹⁰⁴¹ 시(是): ‘옳을 시’. ‘이것’, ‘올바름’. ‘실시(失是)’는 ‘이 올바름을 잃다’.

¹⁰⁴² “有孚于飲酒 无咎 濡其首 有孚失是”: 미제괘 상구(上九) 효사. 63번 기제괘 상륙(“濡其首 厲”)과 비교하여, 기제는 ‘위태로움’에서 그치지만, 미제는 ‘올바름을 잃는다’고 하여 더 근본적인 실패를 경고한다. (혹은 ‘믿음’ 때문에 올바름을 잃는다는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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