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거래의 기술’ 요약: 11가지 핵심 전략과 그 이면
서론: 1980년대 ‘트럼프 현상’의 설계도를 읽다
1987년 출간된 도널드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은 단순한 경영서나 자서전을 넘어, 1980년대 뉴욕 부동산 시장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자, 훗날 ‘트럼프 현상’이라 불릴 한 인물의 전략적 사고방식을 세상에 알린 출사표와도 같은 책입니다.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부동산의 왕’ 도널드 트럼프라는 브랜드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책의 본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트럼프 본인의 화려한 성공 스토리를 담은 ‘자서전’이며, 다른 하나는 그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하는 11가지 ‘협상 및 경영 원칙’을 제시하는 ‘전략서’입니다. 트럼프 타워, 코모도어 호텔(현 그랜드 하얏트), 울먼 아이스링크 재건 등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성공시킨 과정이 트럼프 특유의 과시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서술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면의 중요한 맥락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바로 이 책의 고스트라이터였던 토니 슈워츠(Tony Schwartz)¹의 존재입니다. 훗날 슈워츠는 자신이 트럼프의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행동들에 ‘전략적 서사’라는 옷을 입혀 ‘거래의 기술’이라는 신화를 창조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거래의 기술’에 담긴 11가지 핵심 원칙을 중심으로, 트럼프가 제시하는 전략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원칙들이 각 사례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분석 및 요약합니다. 이 책은 한 인물의 성공 신화인 동시에,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과 대중을 움직이는 방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제1부: ‘거래의 기술’의 배경과 철학 – 1980년대와 ‘트럼프 카드’
‘거래의 기술’은 1980년대 레이건 시대, 즉 규제 완화와 금융 자본주의, 그리고 ‘성공’에 대한 노골적인 열망이 지배하던 시대의 산물입니다. 이 책은 트럼프가 겪은 일주일간의 일과를 서술하는 프롤로그로 시작하여, 그의 유년 시절부터 책이 쓰인 1987년까지의 주요 거래 사례들을 상세히 다룹니다.
1. 트럼프식 협상 철학: ‘진실한 과장(Truthful Hyperbole)’
트럼프는 이 책에서 자신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진실한 과장’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는 ‘거래의 기술’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철학입니다.
“나는 순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조금 과장하는 것을 믿는다. 나는 이것을 ‘진실한 과장’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순진한 과장법이며, 최종 결과의 위대함을 믿기 때문에 일어나는 무해한 형태의 과장이다.”²
이 ‘진실한 과장’은 단순히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라, ①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홍보), ② 협상의 시작점을 높게 설정하며(앵커링 효과), ③ 스스로와 타인에게 ‘이 프로젝트는 위대하다’는 신념을 주입하는 고도의 심리 전략입니다. 트럼프 타워를 단순한 건물이 아닌 ‘세계 최고의 빌딩’으로 포장하고, 울먼 링크 재건을 ‘시 정부의 무능을 해결한 영웅적 행위’로 규정하는 방식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 전략은 사실(Fact)보다는 인식(Perception)을 중시하며, 미디어를 통해 증폭될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2. 고스트라이터, 토니 슈워츠의 역할과 논란
이 책의 완성도를 논할 때 토니 슈워츠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트럼프와의 18개월간의 밀착 인터뷰와 동행 취재를 통해, 트럼프의 복잡하고 때로는 모순적인 행동들을 일관된 ’11가지 원칙’으로 정리하고 서사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훗날 슈워츠는 2016년 ‘뉴요커’지와의 인터뷰³에서 “내가 트럼프에게 돼지에게 립스틱을 발라주었다(I put lipstick on a pig)”고 표현하며, 트럼프는 사실 전략가가 아니며, 자신이 그의 충동성을 ‘거래의 기술’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로 감쌌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제시하는 11가지 원칙은 ‘트럼프’라는 인물이 본능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사용해 온 행동 패턴을 명확하게 코드화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지닙니다. 이 책이 트럼프의 ‘실체’이든 슈워츠의 ‘창작’이든, 중요한 것은 이 11가지 원칙이 40년 가까이 ‘트럼프’라는 브랜드를 지탱해 온 핵심 전략으로 작동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제2부: 거래의 기술 11가지 핵심 원칙 심층 분석
‘거래의 기술’의 핵심은 다음 11가지 원칙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각 원칙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트럼프가 실제 거래에서 어떻게 상대를 압박하고, 위험을 관리하며, 여론을 주도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전술입니다.
1. 크게 생각하라 (Think Big)
“나는 크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만약 어차피 생각할 것이라면, 크게 생각하는 것이 낫다.”
트럼프 전략의 제1원칙이자 그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이는 단순히 ‘꿈을 크게 가져라’는 자기계발서적 조언이 아닙니다.
- 협상의 앵커링(Anchoring): 협상 테이블에서 처음부터 압도적으로 높은 목표치를 제시함으로써, 상대방의 기대치를 그쪽으로 끌어당기는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를 노립니다. 예를 들어, 100억 원의 가치가 있는 땅을 1000억 원에 팔겠다고 선언하면, 비록 300억 원에 타결되더라도 상대방은 ‘엄청나게 깎았다’고 생각하고, 트럼프는 ‘100억 원짜리를 300억 원에 팔았다’는 실리를 챙깁니다.
- 브랜딩과 미디어 효과: ‘세계 최고’, ‘가장 거대한’, ‘전례 없는’ 등의 수식어를 통해 프로젝트 자체를 하나의 ‘이벤트’로 만듭니다. 이는 언론의 관심을 끌어모으고(7번 원칙과 연결), 프로젝트의 가치와 위상을 인위적으로 격상시킵니다. 트럼프 타워의 80피트짜리 실내 폭포, 황금색 외관 등은 모두 ‘크게 생각하라’는 원칙의 물리적 구현입니다.
- 자기 충족적 예언: 스스로와 팀원들에게 거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열정과 에너지를 끌어냅니다.
2.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라 (Protect the Downside and the Upside Will Take Care of Itself)
“나는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한다. 만약 최악의 상황을 감당할 수 있다면, 좋은 상황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다.”
화려하고 공격적인 이미지와 달리, ‘거래의 기술’에서 트럼프는 **위험 회피(Risk Aversion)**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합니다. 이는 그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 레버리지의 양면성: 트럼프는 막대한 부채(Leverage)를 활용해 사업을 확장했지만, 그 부채가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음을 인지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항상 최악의 경우(금리 인상, 시장 붕괴, 공사 지연)에도 파산하지 않을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집중합니다.
- 구체적인 안전장치:
- 세금 감면(Tax Abatements): 코모도어 호텔 재건 시, 뉴욕시로부터 40년간의 파격적인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아내어, 불경기에도 고정 비용을 최소화했습니다.
- 사전 분양/임대: 트럼프 타워 건설 시, 완공되기도 전에 주요 상업 공간(티파니 등)과 고급 아파트의 사전 계약을 성사시켜 현금 흐름을 확보하고 리스크를 줄였습니다.
- 파트너십: 하얏트(Hyatt)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자본 부담을 나누고, 호텔 운영의 위험을 전문 기업에 맡겼습니다.
- ‘최악’을 견디면 ‘최선’이 온다: 이 원칙은 성공에 대한 낙관론이 아니라, 생존에 대한 비관론에 가깝습니다. 그는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조차 불황을 대비하며 거래를 설계했습니다.
3. 선택의 폭을 넓혀라 (Maximize Your Options)
“나는 한 가지 거래나 접근 방식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항상 여러 개의 공을 공중에 띄워 놓는다.”
이 원칙은 협상력을 극대화하고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핵심적인 유연성 전략입니다.
- ‘대안’의 힘: 협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이 거래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태도입니다. 트럼프는 특정 부지를 매입할 때, 동시에 다른 여러 부지를 검토하며 경쟁을 붙입니다. 은행 대출을 받을 때도 여러 은행을 동시에 접촉하여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 다중 시나리오: 하나의 계획(Plan A)이 막혔을 때 즉시 가동할 Plan B, Plan C를 준비해둡니다. 예를 들어, 특정 건물의 용도 변경 허가가 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다른 용도로 즉시 전환할 수 있는 설계를 동시에 검토합니다.
- 유연성과 예측 불가능성: 상대방이 자신의 다음 수를 예측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때로는 일부러 모순된 정보를 흘리거나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타진함으로써,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고 협상의 주도권을 가져옵니다.
4. 시장을 알라 (Know Your Market)
“나는 내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그들은 최고의 품질, 최고의 입지, 그리고 ‘트럼프’라는 이름이 주는 특별함을 원한다.”
트럼프는 자신이 단순한 건설업자가 아니라, 시장의 심리와 욕망을 정확히 읽어내는 ‘마케터’임을 강조합니다.
- 고객 페르소나의 명확화: 그의 타깃은 명확합니다. ‘최고’를 원하는 부유층, 그리고 ‘성공’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신흥 부자들입니다. 그는 이들이 원하는 것이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상징하는 ‘트로피’**임을 간파했습니다.
- 수요 창출: 그는 시장의 수요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과장’과 브랜딩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합니다. 트럼프 타워가 완공되자, 그곳에 산다는 것 자체가 성공의 상징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 데이터보다 직관: 그는 복잡한 시장 분석 보고서보다, 직접 현장을 방문하고 사람들과 대화하며 얻는 ‘직관’을 더 신뢰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내 배짱(guts)을 믿는다.”
5. 지렛대를 활용하라 (Use Your Leverage)
‘거래의 기술’에서 ‘지렛대(Leverage)’는 단순히 ‘돈(부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상대방을 움직여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모든 종류의 ‘힘’**을 의미합니다.
- 미디어 레버리지: 트럼프가 가장 잘 활용하는 지렛대입니다. 언론에 끊임없이 자신의 계획을 알리고, 때로는 논쟁적인 발언으로 이슈를 만듭니다. 미디어의 관심은 그 자체로 프로젝트의 가치를 높이고, 협상 상대(시 정부, 은행 등)를 압박하는 수단이 됩니다.
- 정치적 레버리지: 뉴욕시의 복잡한 인허가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그는 시장, 시 의원, 지역 유지 등 핵심 정치인들과의 인맥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코모도어 호텔의 세금 감면은 이러한 정치적 레버리지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입니다.
- 시간 레버리지: 때로는 일부러 협상을 지연시키거나, 혹은 반대로(울먼 링크) 압도적인 속도로 일을 처리함으로써 상대방을 자신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합니다.
- 상대방의 약점: 협상 상대의 숨겨진 욕망(예: 명예욕)이나 절박함(예: 자금난)을 파악하여 이를 지렛대로 활용합니다.
6. 입지를 강화하라 (Enhance Your Location)
부동산 개발업자로서 트럼프에게 ‘입지(Location)’는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좋은 입지를 ‘선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입지의 가치를 ‘극대화’하거나, 심지어 좋지 않은 입지를 ‘창조’합니다.
- 최고의 입지 선점: 트럼프 타워 부지(맨해튼 5번가와 56번가 코너)는 그 자체로 최고의 입지였습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옆 건물인 티파니(Tiffany & Co.)의 ‘공중권(Air Rights)’⁴을 매입하여 더 높고 화려한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 죽은 입지 살리기: 코모도어 호텔은 1970년대 파산 직전의 뉴욕시, 그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그랜드 센트럴역 주변에 있었습니다. 모두가 기피하던 입지였지만, 트럼프는 이곳이 뉴욕의 ‘관문’이 될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파격적인 디자인과 세금 감면을 통해 이 지역을 맨해튼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활시켰습니다.
- 브랜드가 곧 입지다: “트럼프”라는 브랜드 자체가 입지의 가치를 높이는 요소가 됩니다.
7. 언론을 이용하라 (Get the Word Out)
“좋은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보다 홍보하기 쉽다. 그리고 언론은 항상 좋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원칙은 ‘크게 생각하라’와 함께 트럼프 전략의 핵심 엔진입니다. 그는 광고비를 쓰지 않고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천재적인 미디어 전략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논쟁 만들기: 그는 미디어가 ‘갈등’과 ‘논쟁’을 좋아한다는 속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울먼 링크 재건 시, 그는 뉴욕시장의 무능함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을 ‘시민 영웅’으로, 시 정부를 ‘무능한 악당’으로 프레이밍했습니다. 언론은 이 갈등 구도를 대서특필했고, 트럼프는 무료로 엄청난 홍보 효과를 얻었습니다.
- 스토리텔링: 그는 단순한 사실(건물 착공)을 전달하지 않고, ‘스토리’를 만들어냅니다. 트럼프 타워의 ’80피트 폭포’나 ‘아프리카산 대리석’ 등은 모두 언론이 기사화하기 좋은 ‘이야깃거리’입니다.
- 언론과의 공생: 그는 기자들에게 24시간 내내 전화를 열어두고, 그들이 원하는 ‘자극적인 코멘트’를 기꺼이 제공합니다. 언론은 특종을 얻고, 트럼프는 홍보를 얻는 공생 관계를 구축합니다.
8. 반격하라 (Fight Back)
“누군가 나를 부당하게 공격하면, 나는 항상 더 거세게 반격한다. 그래야 그들이 다시는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
이 원칙은 트럼프의 매우 본능적이면서도 계산된 전략입니다. 그는 방어를 최선의 공격으로 삼지 않고, 공격을 최선의 방어로 삼습니다.
- 비례의 원칙 무시: 1의 공격을 받으면 10으로 되갚아줍니다. 상대방이 예측한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강력한 반격으로 상대의 전의를 상실시킵니다.
- 공개적인 반격: 비판은 주로 언론이나 공개적인 서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망신을 주는 동시에, 대중에게 ‘나는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는 강인한 이미지를 심어줍니다.
- 소송의 활용: 법적 분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소송을 협상의 지렛대로 적극 활용합니다. (5번 원칙과 연결)
- 목적: 이 전략의 목적은 단순히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는 건드리면 피곤해진다’는 평판을 만들어 잠재적인 적들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있습니다.
9. 결과를 보여줘라 (Deliver the Goods)
“아무리 떠들어도, 결국에는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모든 과장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1980년대에 성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그는 자신이 약속한(혹은 과장한) 것을 실제로 만들어냈습니다.
- 울먼 링크의 기적: 뉴욕시가 6년간 1,300만 달러를 쓰고도 완공하지 못한 울먼 아이스링크를, 트럼프는 단 4개월 만에 250만 달러(시 예산보다 훨씬 적은)로 완공해버렸습니다. 이는 그의 경영 능력과 ‘결과’를 보여준 가장 극적인 사례입니다.
- 트럼프 타워의 완성: 수많은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그는 약속했던 ‘세계 최고급 빌딩’을 실제로 맨해튼 중심부에 세웠습니다.
- ‘진실한 과장’의 완성: 이 ‘결과물’은 그의 과거의 ‘과장’을 ‘진실’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결과가 나오면, 과정에서의 모든 논란이나 과장은 ‘성공을 위한 전략’으로 미화됩니다.
10. 비용을 통제하라 (Contain the Costs)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얼마든지 돈을 쓰지만, 불필요한 비용은 1달러도 낭비하지 않는다.”
‘크게 생각하라’는 원칙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경영 원칙입니다.
- 꼼꼼한 협상: 그는 계약서의 세부 조항 하나하나를 꼼꼼히 따지며, 건설 비용, 자재 비용, 인건비 등 모든 단계에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치열하게 협상합니다.
- 효율성 극대화: 울먼 링크 재건 시, 그는 기존의 관료주의적 절차를 무시하고, 가장 효율적인 하청 업체를 직접 선정하고 현장을 독려하여 공사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 레버리지의 또 다른 측면: 그는 때로 대금 지급을 미루거나 분쟁을 만들어, 하청 업체나 채권자들에게 비용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⁵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그의 ‘비용 통제’가 항상 합법적이거나 도덕적이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11. 즐겨라 (Have Fun)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나는 거래 자체를 즐긴다. 돈은 그저 점수를 매기는 방식일 뿐이다.”
이 마지막 원칙은 트럼프가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에게 ‘거래’는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승리를 쟁취하는 ‘게임’ 그 자체입니다.
- 게임으로서의 비즈니스: 그는 협상 과정의 긴장감, 상대방을 이기는 쾌감, 그리고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 자체를 즐깁니다. 이러한 ‘즐기는 태도’는 그에게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제공하고, 상대방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 돈의 의미: 돈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승리를 증명하는 ‘스코어보드’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돈 자체보다 ‘승리’와 ‘명성’에 더 집착하게 만듭니다.
제3부: 주요 사례 연구로 본 ‘거래의 기술’의 실제 적용
‘거래의 기술’은 이 11가지 원칙이 어떻게 실제 프로젝트에서 복합적으로 적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집이기도 합니다.
사례 1: 울먼 아이스링크 (Wollman Rink) – ‘결과’와 ‘홍보’의 승리
1980년대 중반, 뉴욕시는 센트럴 파크의 울먼 링크를 재건하려 했으나, 6년간 1,300만 달러를 쏟아붓고도 실패하며 시민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습니다.
- 등장 (크게 생각하라 / 언론 이용): 트럼프는 시장에게 “내가 6개월 안에 300만 달러로 완공하겠다”고 공개 제안합니다. 언론은 ‘억만장자 영웅 vs 무능한 시 정부’라는 자극적인 구도를 만들어 대서특필합니다. (원칙 1, 7)
- 실행 (비용 통제 / 결과): 그는 실제 공사에 들어가자, 관료주의를 배제하고 최고의 전문가를 투입하며 현장을 직접 지휘합니다. 결국 4개월 만에 225만 달러라는 훨씬 적은 비용으로 링크를 완공합니다. (원칙 9, 10)
- 승리 (반격 / 즐겨라): 그는 링크 개장식에서 시장의 무능함을 다시 한번 질타하며, 자신을 뉴욕의 해결사로 완벽하게 브랜딩합니다. (원칙 8, 11)
- 결과: 그는 이 프로젝트로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유능한 해결사’라는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례 2: 코모도어 호텔 (그랜드 하얏트) – ‘지렛대’와 ‘위험 회피’의 승리
1970년대 파산 직전의 뉴욕시, 그랜드 센트럴역 옆의 낡은 코모도어 호텔을 재개발한 프로젝트입니다.
- 비전 (크게 생각하라 / 시장): 모두가 기피하던 낙후된 지역이었지만, 트럼프는 이곳의 ‘입지적 잠재력'(뉴욕의 관문)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원칙 1, 4, 6)
- 지렛대 활용 (지렛대 / 선택): 그는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모든 지렛대를 동원합니다.
- 정치적 지렛대: 시 정부를 설득하여 40년간의 파격적인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아냅니다. 이는 ‘최악의 상황(불경기)’을 대비하는 핵심 안전장치였습니다. (원칙 2, 5)
- 파트너십 지렛대: 자금과 호텔 운영 경험이 부족했기에, 하얏트(Hyatt) 그룹을 파트너로 끌어들여 위험과 자본을 분담합니다. (원칙 3, 5)
- 금융 지렛대: 은행으로부터 막대한 대출을 받아냅니다.
- 결과: 그는 최소한의 자기 자본으로 뉴욕의 랜드마크 호텔을 성공시켰고, 이 성공은 그에게 ‘거래의 귀재’라는 명성을 안겨주었습니다.
결론: ‘거래의 기술’을 넘어, ‘트럼프’라는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
도널드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은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담은 성공 신화이자, 한 개인의 독특한 비즈니스 철학을 담은 전략서입니다. 11가지 핵심 원칙들은 ‘크게 생각하고(Think Big)’, ‘언론을 이용하며(Get the Word Out)’, ‘강하게 반격(Fight Back)’하는 트럼프 특유의 공격적인 스타일과, ‘최악을 대비하고(Protect the Downside)’, ‘비용을 통제(Contain the Costs)’하는 의외의 신중함이 결합된 결과물입니다.
고스트라이터 토니 슈워츠의 폭로처럼, 이 원칙들이 트럼프의 계산된 전략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본능적인 행동을 사후에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에 정리된 11가지 원칙들이 1987년 이후 그의 비즈니스와 정치 여정에서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게 반복, 적용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진실한 과장’을 통해 아젠다를 선점하고, 미디어를 지렛대로 여론을 움직이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협상에서 승리하는 이 ‘기술’들은, 부동산 거래 테이블을 넘어 21세기 정치 무대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결국 ‘거래의 기술’을 읽는 현대적 의의는, 이 책을 성공적인 부동산 투자의 교과서로 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트럼프’라는 한 인물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반응하며, 어떻게 대중을 설득하고 움직이는지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상세한 ‘심리적, 전략적 설계도’**로서 이 책을 분석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가 일으킨 거대한 현상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주(Footnotes):
¹ 토니 슈워츠(Tony Schwartz): ‘거래의 기술’의 실제 집필을 담당한 고스트라이터. 당시 저널리스트였던 그는 트럼프를 밀착 취재하여 이 책을 저술했다. 훗날 그는 트럼프의 대통령 출마 이후, 자신이 트럼프라는 인물을 미화하는 데 기여했다며 깊은 후회를 표명했다.
² ‘진실한 과장(Truthful Hyperbole)’: ‘거래의 기술’ 서문에서 트럼프가 직접 밝힌 자신의 홍보 철학. 그는 이를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무해한 과장법”이라고 설명하며, 자신의 프로젝트가 실제로 위대하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정당화한다.
³ 뉴요커(The New Yorker): 2016년 7월 25일 자 기사, “The Art of the Deal” Ghostwriter Tells All (저자: Jane Mayer). 이 기사에서 토니 슈워츠는 트럼프와의 작업 과정과 자신의 후회를 상세히 밝혔다.
⁴ 공중권(Air Rights): 특정 부지의 상공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 뉴욕시 같은 고밀도 도시에서는, 인접한 저층 건물의 공중권을 매입하여 자신의 건물을 법적 용적률보다 더 높게 지을 수 있다. 트럼프는 티파니 백화점의 공중권을 매입하여 트럼프 타워의 상징적인 높이를 확보했다.
⁵ 대금 지급 분쟁: 트럼프는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하청 업체, 계약자, 심지어 변호사들에게도 대금 지급을 미루거나 삭감하여 수많은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이는 ‘비용 통제’의 어두운 측면으로 비판받는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