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음의 예절, 위험 속의 형통)
서론: 작은 축적(小畜)을 넘어, 올바르게 밟아 나아갈 때(履)
주역(周易) 64괘¹ 탐험, 하늘(乾)과 땅(坤)², 시작의 고통(屯)³, 무지의 어둠(蒙)⁴, 기다림의 지혜(需)⁵, 갈등의 본질(訟)⁶, 무리의 질서(師)⁷, 친밀함의 길(比)⁸, 그리고 작은 축적과 멈춤(小畜)⁹을 지나, 우리는 열 번째 괘인 **천택리(天澤履)**에 이르렀습니다. 리(履)라는 글자는 발(足)로 밟는(復) 행위를 형상화한 것으로, ‘밟다’, ‘신발’, ‘예절(禮)’, ‘실천하다’, ‘위험한 것을 밟다’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앞선 소축괘(小畜卦)가 강건한 힘이 부드러운 힘에 의해 잠시 멈추어 내실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리괘(履卦)는 그 **준비된 힘(天)을 가지고 이제 구체적인 현실(澤) 속에서 어떻게 ‘올바르게 행동하고(履) 나아갈 것인가’**를 다룹니다. 주역 괘의 순서를 설명하는 서괘전(序卦傳)¹⁰에서는 “쌓이면 예절이 있게 되므로 소축괘 다음에 리괘로 받는다(物畜然後有禮 故受之以履)”고 하여, 어느 정도 축적(畜)이 이루어진 후에는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적 질서와 예절(禮)을 세우고 실천(履)하는 단계가 온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리괘는 단순히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 도덕률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괘의 상징 속에는 ‘호랑이 꼬리를 밟는(履虎尾)’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상황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는 리괘가 강력한 힘(호랑이)을 가진 존재나 위험한 상황 앞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관계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담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리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올바른 처신(禮)과 위험 관리(履險)**라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를 동시에 다루는 괘입니다. 이 괘는 예절과 신중함이 어떻게 위험 속에서도 형통(亨)함을 가져다주는지를 보여주며, 각기 다른 위치와 상황에서 어떤 ‘밟음(履)’이 길(吉)하고 어떤 ‘밟음’이 흉(凶)한지를 상세하게 가르쳐줍니다.
이 글은 주역 입문서들의 보편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리괘의 구조와 상징, 괘 전체의 의미를 담은 괘사(卦辭)¹¹, 그리고 올바른 처신의 6단계 상황과 지혜를 보여주는 각 효사(爻辭)¹²를 분석합니다. 리괘의 여정은 비록 조심스럽지만, 예를 바탕으로 올바르게 나아갈 때 두려움 없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우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제1부: 리괘(履卦)의 구조와 상징 – 하늘 아래 연못, 예절과 위험의 공존
64괘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그 구조와 상징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리괘는 하늘과 연못의 조합을 통해 ‘예절’과 ‘위험’, 그리고 ‘따름’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보여줍니다.
1. 팔괘(八卦)¹³의 조합: 연못(兌 ☱) 위에 하늘(乾 ☰)
리괘는 팔괘 중 연못(澤) 또는 **기쁨(悅)**을 상징하는 태(兌 ☱) 괘가 하괘(下卦, 아래)에 놓이고, 하늘(天) 또는 **강건함(健)**을 상징하는 건(乾 ☰) 괘가 상괘(上卦, 위)에 놓인 형태입니다.
- 하괘 태(兌 ☱): 맨 위 하나의 음효(⚋) 아래 두 개의 양효(⚊)가 있는 모습. 기쁨(悅), 말(言), 소녀, 연못, 부드러움, 따름을 상징합니다. 여기서는 위(乾)를 ‘기쁘게 따르는 아래(少女)’ 또는 **’얕고 잔잔해 보이지만 위험할 수 있는 연못’**을 나타냅니다.
- 상괘 건(乾 ☰): 세 개의 양효(⚊⚊⚊)로 이루어진 순수한 양(陽). 강건함(健), 하늘, 아버지, 군주, 절대적인 힘을 상징합니다. 여기서는 아래(兌)가 따라야 할 ‘강력한 권위’ 또는 **’이상적인 원칙’**을 나타냅니다.
- 조합의 의미 (天澤履): 하늘(乾)이 위에 있고 연못(兌)이 아래에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하늘의 질서(乾) 아래 연못(兌)이 순응하며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상하 관계를 보여줍니다. 하늘은 위에 있고 연못은 아래에 있는 것이 마땅한 이치이며, 아랫사람(兌)이 윗사람(乾)을 예(禮)를 다해 기쁘게(悅) 따르는 모습이 바로 ‘리(履)’, 즉 올바른 예절과 질서의 핵심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연못(澤)은 호랑이가 사는 곳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며(澤中有虎), 兌는 ‘기쁨’과 함께 ‘파괴'(가을의 숙살지기)의 의미도 내포합니다. 따라서 이 구조는 **강건한 하늘(乾)이라는 강력한 존재 바로 아래에서, 자칫 실수하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연못(兌)이 아슬아슬하게 따라가는 ‘위험한 밟음(履險)’**의 상황 또한 암시합니다. 즉, 리괘는 **’예절을 통한 조화’**와 **’위험 속에서의 신중한 처신’**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2. 괘의 모습(象): 하늘 아래 연못, 상하를 분별하는 군자
주역 해설서인 ‘상전(象傳)’¹⁴에서는 리괘의 상하 팔괘 조합을 보고 그 상징적인 이미지를 설명합니다. 리괘에 대한 상전(대산전, 大象傳)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上天下澤 履 君子以辨上下 定民志” (상천하택 리 군자이변상하 정민지)**¹⁵
- 해석: “위(上)에는 하늘(天)이 있고 아래(下)에는 연못(澤)이 있는 것이 리(履)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상하(上下)를 분별하고(辨) 백성의 뜻(民志)을 안정시킨다(定).”
- 의미: 하늘은 위에 있고 연못은 아래에 있는 명확한 상하 질서(上天下澤)가 바로 리(履)의 근본 이미지입니다. 하늘은 만물을 덮어주고 연못은 만물을 윤택하게 하듯,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할 때 조화로운 질서가 유지됩니다. 따라서 군자(주역에서 이상적인 인간상)는 이러한 자연의 질서를 본받아, 사회 내에서의 상하 관계와 각자의 역할(上下)을 명확히 분별하고(辨), 이를 통해 백성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안정된 마음(民志)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질서를 바로 세워야(定) 한다는 가르침을 이끌어냅니다. 이는 리괘가 단순한 개인적인 처세술을 넘어, 사회적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는 ‘예(禮)’의 근본 원리를 다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각자의 분수를 알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 공동체 전체의 안정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3. 핵심 키워드와 상징
리괘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핵심 속성: 밟음, 예절, 실천, 처신, 질서, 분별, 신중함, 위험 관리
- 자연 상징: 하늘 아래 연못, 정해진 길을 밟아감
- 인간사 상징: 사회생활, 직장 생활, 인간관계에서의 예의범절, 의례(儀禮), 위험한 상황 대처, 법규 준수
- 핵심 비유: 호랑이 꼬리 밟기 (履虎尾)
- 핵심 과제: 예(禮)와 중(中) 지키기, 신중함, 분수 알기, 올바른 실천
리괘는 우리가 사회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고, 특히 자신보다 강한 존재나 위험한 상황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실질적인 지혜를 제공합니다. 그 핵심은 **’예(禮)’를 바탕으로 한 신중하고 올바른 ‘밟음(履)’**에 있습니다.
제2부: 괘사(卦辭) – 리괘 전체의 의미: “履虎尾 不咥人 亨”
괘사(卦辭)는 괘 전체에 대한 설명과 길흉 판단입니다. 리괘의 괘사는 매우 강렬하고 상징적인 비유를 통해 괘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履虎尾 不咥人 亨”
**(리호미 부질인 형)**¹⁶
- 해석: “호랑이(虎) 꼬리(尾)를 밟았으나(履), (호랑이가) 사람(人)을 물지(咥)¹⁷ 않으니, 형통(亨)¹⁸하다.”
- 의미:
- 리호미(履虎尾): 호랑이 꼬리를 밟다. 이는 매우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상황에 처했음을 상징합니다. 호랑이는 강력한 힘과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상징하며, 그 꼬리를 밟는 것은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무모한 행동처럼 보입니다. 이는 강력한 권력자 바로 곁에 있거나, 매우 민감하고 위험한 일을 다루거나, 혹은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상황에 놓였음을 비유합니다.
- 부질인(不咥人): 사람을 물지 않는다. 놀랍게도, 호랑이는 사람을 물지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운이 좋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밟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즉, 비록 위험한 상황이지만 밟는 사람(履者)이 예의(禮)를 갖추고, 두려워하면서도(惕) 신중하고(愼) 올바르게(貞) 행동했기 때문에 호랑이(강자)가 해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혹은, 호랑이(강자)가 덕(德)이 있어 함부로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 형(亨): 형통하다. 위험한 상황을 무사히 넘겼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형통함에 이른다는 결과입니다. 이는 올바른 예절과 신중한 처신이 단순히 위험을 피하게 하는 것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목표를 달성하고 성공(亨)으로 이끄는 길임을 보여줍니다. 위험 속에서 예를 지키며 나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형통함을 가져다준다는 역설적인 지혜입니다.
이 괘사는 리괘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인생에는 피할 수 없는 위험(虎尾)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履)’가 결과를 결정한다. 예의와 신중함, 그리고 올바름을 잃지 않는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극복하고 형통함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제3부: 효사(爻辭) – 6단계 변화: ‘밟음(履)’의 다양한 모습과 결과
이제 리괘의 6개의 효(爻)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각 효는 ‘밟음(履)’, 즉 행동하고 처신하는 다양한 방식과 그 결과를 보여줍니다. 특히 강한 힘(양효)과 부드러움(음효), 그리고 각자의 위치(爻位)에 따라 어떻게 다른 ‘밟음’이 나타나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1. 초구(初九): 소리(素履) 왕(往) 무구(无咎)
- 원문: 初九 素履 往 无咎 (초구 소리 왕 무구)
- 해석: “초구는 본래(素)대로 밟아(履) 나아가니(往), 허물(咎)이 없다.”¹⁹
- 위치와 상징: 맨 아래 첫 번째 효. 리괘의 시작. 하괘 태(兌 ☱)의 아래에 있는 양효(⚊). 아직 사회적 지위나 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순수한 상태입니다.
- 의미와 조언: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하고 소박한(素) 본성 그대로 행동하는(履) 모습입니다. 복잡한 계산이나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꾸밈없이 실천하며 나아갑니다(往). 비록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그 순수함과 진실함 덕분에 허물이 없다(无咎)는 것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본성에 따라 순수하게 행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효입니다.
- 소상전(小象傳) 해설: “素履之往 獨行願也” (소리지왕은 홀로(獨) 원하는(願) 바를 행(行)하는 것이다.)²⁰ – 외부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순수한 뜻을 따라 행동함을 부연합니다.
- 주역 입문 관점: 모든 행동의 시작은 순수한 마음이어야 한다. 세속적인 이해타산이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진솔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심을 지키는 것이 허물을 면하는 길이다.
2. 구이(九二): 리도탄탄(履道坦坦) 유인(幽人) 정(貞) 길(吉)
- 원문: 九二 履道坦坦 幽人貞 吉 (구이 리도탄탄 유인정 길)
- 해석: “구이는 평탄한(坦坦)²¹ 길(道)을 밟아(履) 가니, 그윽한 사람(幽人)²²이 올곧음(貞)을 지키면 길(吉)하다.”²³
- 위치와 상징: 하괘 태(兌 ☱)의 가운데 두 번째 효. 양(陽)의 효가 음(陰)의 자리에 와서 부정(不正)하지만, **하괘의 중(中)**을 얻었습니다. 강건함(陽)을 갖추었지만 중용(中)을 지키며 부드러움(陰位)을 잃지 않은 이상적인 위치입니다.
- 의미와 조언: 이 효는 중용의 덕을 지키며 편안하고 안정된 길(道坦坦)을 걸어가는 모습입니다. 과도하게 나아가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고,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조용히 덕을 쌓는 ‘숨어있는 군자(幽人)’와 같습니다. 이러한 겸손하고 안정된 태도로 올곧음(貞)을 꾸준히 지켜나가면 길(吉)할 것입니다. 이는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더라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의 가치를 보여주는 효입니다.
- 소상전 해설: “幽人貞吉 中不自亂也” (유인정길은 중(中)을 지켜 스스로(自) 혼란스럽지(亂) 않기 때문이다.) – 중용의 덕을 지켜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길하다는 의미입니다.
- 주역 입문 관점: 진정한 강함은 요란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중심을 잡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데 있다. 세속적인 명예나 이익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원칙(貞)을 지키며 안정된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하다.
3. 육삼(六三): 묘능시(眇能視) 파능리(跛能履) 리호미(履虎尾) 질인(咥人) 흉(凶) 무인위우대군(武人爲于大君)
- 원문: 六三 眇能視 跛能履 履虎尾 咥人 凶 武人爲于大君 (육삼 묘능시 파능리 리호미 질인 흉 무인위우대군)
- 해석: “육삼은 애꾸눈(眇)이면서 보려(視) 하고, 절름발이(跛)이면서 밟으려(履) 한다. 호랑이 꼬리(虎尾)를 밟아(履) 사람을 무니(咥人) 흉(凶)하다. (그러나) 무인(武人)이 대군(大君)을 위한다면 (괜찮다).”²⁴
- 위치와 상징: 하괘 태(兌 ☱)의 맨 위 세 번째 효. 음효(⚋)가 양(陽)의 자리에 온 부당위(不當位)하고 부중(不中)한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한 자리입니다. 아래의 강한 양들(初九, 九二) 위에 위태롭게 올라타 있으며, 바로 위에는 상괘 건(乾)의 강력한 양(九四)과 맞닿아 있습니다. 능력(陰)은 부족하면서 자리는 높고(三爻), 강한 힘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 의미와 조언: 이 효는 자신의 능력(애꾸눈, 절름발이)은 부족하면서 분수를 모르고 무리하게 나아가려(보려 하고 밟으려 함) 하는 어리석음을 경고합니다. 결국 주제넘게 위험한 행동(履虎尾)을 하다가 호랑이에게 물리는 것처럼 **큰 화(咥人 凶)**를 당하게 됩니다. 이는 능력 부족과 상황 파악 실패가 부르는 재앙을 보여줍니다.
- 반전의 가능성 (무인위우대군): 하지만 마지막 구절은 흥미로운 반전을 제시합니다. 만약 이러한 무모한 행동이 사리사욕이 아니라, 충성스러운 무인(武人)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군주(大君)를 위해 용감하게 나서는 경우라면, 비록 위험하고 상처 입을지라도 그 충의(忠義)만큼은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를 남깁니다. 즉, **행동의 ‘동기’**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의미는 ‘흉(凶)’에 가깝습니다.
- 소상전 해설: “眇能視 不足以有明也 跛能履 不足以與行也 咥人之凶 位不當也 武人爲于大君 志剛也” (묘능시는 밝음(明)이 있기에 부족하다. 파능리는 함께(與) 행(行)하기에 부족하다. 질인지흉은 자리가 부당(不當)하기 때문이다. 무인위우대군은 뜻(志)이 강(剛)하기 때문이다.) – 능력 부족과 부당한 위치가 흉함의 원인이며, 무인의 경우는 그 강직한 뜻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 주역 입문 관점: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능력이 부족하면서 무모하게 나서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주변까지 위험에 빠뜨린다. 하지만 때로는 대의를 위한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으며, 그 진정성은 인정받을 수 있다(결과가 좋다는 의미는 아님). 상황 판단과 동기의 순수성이 중요하다.
4. 구사(九四): 리호미(履虎尾) 색색(愬愬)²⁵ 종길(終吉)
- 원문: 九四 履虎尾 愬愬 終吉 (구사 리호미 색색 종길)
- 해석: “구사는 호랑이 꼬리(虎尾)를 밟았으나, 두려워하고 조심하니(愬愬), 마침내(終) 길(吉)하다.”²⁶
- 위치와 상징: 상괘 건(乾 ☰)의 맨 아래 네 번째 효. 음(陰)의 자리에 양효(⚊)가 와서 부당위(不當位)하지만, 바로 위에 강력한 군주(九五)가 있고 아래의 위험(兌)을 벗어나 건(乾)의 영역으로 들어선 자리입니다. 여전히 위험(虎尾)하지만, 신중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위치입니다.
- 의미와 조언: 이 효 역시 괘사의 ‘호랑이 꼬리를 밟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강력한 군주(九五)를 바로 아래에서 모셔야 하는 부담스러운 자리입니다. 하지만 육삼과 달리, 구사는 자신의 처지를 알고 **매우 두려워하며 조심하는 태도(愬愬)**를 보입니다. 이처럼 위험을 인지하고 극도로 신중하게 처신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상황을 넘기고 길(吉)함을 얻게 됩니다. 이는 위험한 상황일수록 두려워할 줄 알고 조심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보여주는 효입니다.
- 소상전 해설: “愬愬終吉 志行也” (색색종길은 뜻(志)을 행(行)하기 때문이다.) – 비록 두려워하지만 자신의 올바른 뜻(군주를 잘 보좌하려는)을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에 길하다는 의미입니다.
- 주역 입문 관점: 위험을 인지하는 것이 안전의 시작이다. 어려운 상황이나 강한 상대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며, 그 두려움이 오히려 신중하고 올바른 행동을 이끌어내어 길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겸손함과 신중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5. 구오(九五): 결리(夬履) 정(貞) 려(厲)
- 원문: 九五 夬履 貞 厲 (구오 결리 정 려)
- 해석: “구오는 과감하게(夬)²⁷ 밟아 나아가니(履), 올곧음(貞)을 지켜야 위태롭다(厲).”²⁸
- 위치와 상징: 상괘 건(乾 ☰)의 가운데 다섯 번째 효. **양(陽)의 자리에 양효(⚊)가 온 군주의 자리(君位)**이며, 괘 전체에서 가장 강력하고 이상적인 **중정(中正)**의 자리입니다. 모든 것을 결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입니다.
- 의미와 조언: 이 효는 리괘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주체입니다. 그는 더 이상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행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과감하고 결단력 있게(夬) 자신의 길을 밟아 나아가야(履) 합니다. 이것이 바로 리더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강력한 힘 때문에 독선에 빠지거나 무리수를 둘 위험이 상존합니다. 따라서 반드시 올곧음(貞)을 굳게 지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은 여전히 **위태로움(厲)**을 내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강력한 리더십에는 반드시 책임감과 올바름, 그리고 신중함이 동반되어야 함을 경고하는 효입니다.
- 소상전 해설: “夬履貞厲 位正當也” (결리정려는 자리(位)가 바르고(正) 마땅하기(當) 때문이다.) – 최고의 자리(正當)에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나아갈 수 있지만, 바로 그 자리의 무게 때문에 올곧음을 지키지 않으면 위태로워짐을 설명합니다.
- 주역 입문 관점: 리더는 때로 과감한 결단과 실행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힘은 반드시 올바른 원칙(貞) 위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책임감과 신중함(厲)을 잃지 않아야 한다.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6. 상구(上九): 시리(視履) 고상(考祥) 기선(其旋) 원길(元吉)
- 원문: 上九 視履 考祥 其旋 元吉 (상구 시리 고상 기선 원길)
- 해석: “상구는 (자신이) 밟아온 길(履)을 돌아보고(視), 그 상서로움(祥)²⁹을 상고하여(考) 그 도(道)로 회선(旋)³⁰하면, 근본적으로(元) 길(吉)하다.”³¹
- 위치와 상징: 맨 위 여섯 번째 효. 리괘의 가장 마지막 단계. 양(陽)의 효가 음(陰)의 자리에 와서 부당위(不當位)하지만, 모든 과정이 끝나고 결과를 돌아보는 자리입니다.
- 의미와 조언: 리괘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맨 꼭대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때가 아니라, 자신이 걸어온 길(履)을 되돌아보고(視) 그 과정과 결과가 과연 올바르고 상서로웠는지(祥) 깊이 성찰해야(考) 합니다. 만약 부족함이나 잘못이 있었다면 반성하고, 잘한 점이 있다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올바른 길(其旋)**로 돌아와 꾸준히 실천한다면, **가장 근본적이고 큰 길함(元吉)**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반성을 통해 완벽함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는 효입니다. 리괘의 최종적인 완성은 지속적인 성찰과 개선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 소상전 해설: “元吉在上 大有慶也” (원길재상은 위(上)에서 크게 경사(慶)가 있는 것이다.) – 가장 높은 자리에서 반성을 통해 큰 길함을 얻으니 경사스러운 일임을 의미합니다.
- 주역 입문 관점: 성공적인 마무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 대한 성찰이다. 과거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배우는 자세야말로 지속적인 발전과 궁극적인 성공(元吉)을 가져다준다. 배움과 성찰에는 끝이 없다.
제4부: 리괘(履卦)의 종합적 의미와 현대적 적용
천택리괘는 하늘의 질서 아래 연못이 순응하듯, 사회적 관계 속에서 예절(禮)과 올바른 처신(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줍니다. 동시에 호랑이 꼬리를 밟는 비유를 통해, 위험한 상황이나 강력한 존재 앞에서 어떻게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지혜를 제공합니다. 입문서들의 관점을 종합하면, 리괘의 지혜는 다음과 같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 예절과 사회 규범의 중요성: 리괘는 개인의 자유만큼이나 공동체의 질서와 예절(禮)이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사회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알고(辨上下) 그에 맞는 행동(履)을 할 때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定民志) 형통(亨)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직장 생활,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 국제 관계 등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 위험 관리와 신중함: 인생에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虎尾)이 늘 존재합니다. 리괘는 이러한 위험 앞에서 무모하게 돌진하기보다(六三),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두려워하며 조심하는(愬愬, 九四) 신중한 태도가 오히려 안전과 성공(吉)을 가져다준다고 가르칩니다. 위험을 인지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 때와 장소에 맞는 처신 (T.P.O.): 리괘의 여섯 효는 각기 다른 상황에서 요구되는 행동 방식이 다름을 보여줍니다. 순수하게 나아가야 할 때(初九), 묵묵히 내실을 다져야 할 때(九二), 과감히 결단해야 할 때(九五), 그리고 멈추고 성찰해야 할 때(上九)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황에 맞는 유연한 처세술이 필요합니다.
- 내면의 진실성과 일관성: 겉으로 드러나는 예절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내면의 진실성(貞)입니다. 초구의 순수함(素履), 구이의 중정함(幽人貞)은 꾸밈없는 진실함이 결국 길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성찰을 통한 성장: 리괘의 마지막 효(上九)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視履考祥)이야말로 진정한 완성(元吉)에 이르는 길임을 강조합니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끊임없이 자신을 개선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결론: 리괘, 예(禮)로써 위험을 넘어 형통으로 나아가는 길
‘클라우드 주역 (주역입문)’ 등의 안내를 따라 살펴본 천택리(天澤履)괘는 주역 64괘 중 열 번째 괘로서, 사회적 관계와 질서 속에서 ‘올바르게 밟아 나아가는 법(履)’, 즉 예절(禮)과 처신(處身)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하늘 아래 연못이 순응하듯, 리괘는 우리에게 각자의 위치와 역할을 알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 개인과 사회 전체의 조화와 안정을 위해 필수적임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 길은 때로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처럼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 위험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다름 아닌 **예의 바름, 신중함, 그리고 올곧음(貞)**입니다.
순수한 초심(初九)에서 시작하여, 중용의 덕(九二)을 지키고, 분수를 모르는 무모함(六三)을 경계하며, 위험 앞에서 두려워할 줄 아는 신중함(九四)을 배우고, 마침내 리더의 자리에서 과감히 결단하되(九五) 올바름을 잃지 않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上九)하는 리괘의 여정은, 우리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완벽한 로드맵을 제시합니다.
결국 리괘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길을 밟고 있는가? 그 길 위에서 당신은 예(禮)를 지키고 있는가? 당신은 위험 앞에서 신중함을 잃지 않고 있는가? 당신의 ‘밟음(履)’은 당신과 주변 사람들을 형통(亨)함으로 이끌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며 리괘의 지혜를 실천할 때, 우리는 복잡하고 때로는 위험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예(禮)라는 등불을 따라 안전하고 성공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주(Footnotes):
¹ 64괘(六十四卦): 주역의 본체를 이루는 64개의 상징 코드. 팔괘(八卦) 두 개를 위아래로 겹쳐 만들며, 각 괘는 6개의 효(爻)로 구성된다.
² 건괘(乾卦)와 곤괘(坤卦): 주역 64괘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괘. 각각 하늘(天)과 땅(地)을 상징한다.
³ 둔괘(屯卦): 주역 64괘의 세 번째 괘. 수뢰둔(水雷屯). 만물이 처음 생성되는 어려움을 상징한다.
⁴ 몽괘(蒙卦): 주역 64괘의 네 번째 괘. 산수몽(山水蒙). 어리고 무지한 상태와 교육의 필요성을 상징한다.
⁵ 수괘(需卦): 주역 64괘의 다섯 번째 괘. 수천수(水天需). 기다림의 지혜와 때를 준비하는 자세를 상징한다.
⁶ 송괘(訟卦): 주역 64괘의 여섯 번째 괘. 천수송(天水訟). 갈등과 다툼, 송사를 상징한다.
⁷ 사괘(師卦): 주역 64괘의 일곱 번째 괘. 지수사(地水師). 무리, 군대, 조직과 리더십의 원리를 상징한다.
⁸ 비괘(比卦): 주역 64괘의 여덟 번째 괘. 수지비(水地比). 친밀함, 화합, 관계 맺음의 원리를 상징한다.
⁹ 소축괘(小畜卦): 주역 64괘의 아홉 번째 괘. 풍천소축(風天小畜). 작은 막힘, 일시적 정체, 작은 축적을 상징한다.
¹⁰ 서괘전(序卦傳): 주역의 10가지 부록인 십익(十翼) 중 하나. 64괘가 왜 현재와 같은 순서로 배열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¹¹ 괘사(卦辭): 64괘 각각에 대해 그 괘 전체의 의미와 길흉을 설명하는 글. 괘명(卦名) 다음에 나온다.
¹² 효사(爻辭): 64괘를 구성하는 총 384개의 효(爻) 각각에 대해 그 의미와 길흉, 처세의 조언을 설명하는 글.
¹³ 팔괘(八卦): 3개의 효(爻)로 이루어진 8개의 기본 괘. 건(☰), 태(☱), 리(☲), 진(☳), 손(☴), 감(☵), 간(☶), 곤(☷). 주역 64괘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다.
¹⁴ 상전(象傳): 주역의 본문(괘사, 효사)에 대한 해설을 담은 10개의 부록, 즉 ‘십익(十翼)’ 중 하나. 각 괘의 상하 팔괘 조합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설명하는 대산전(大象傳)과 각 효의 의미를 부연 설명하는 소상전(小象傳)으로 나뉜다. 공자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¹⁵ “上天下澤 履 君子以辨上下 定民志”: 리괘의 대산전(大象傳) 구절.
¹⁶ “履虎尾 不咥人 亨”: 리괘의 괘사(卦辭).
¹⁷ 질(咥): ‘물 질’. 짐승이 이빨로 무는 것을 의미한다.
¹⁸ 형(亨): ‘형통할 형’. 제사 음식을 차려놓고 신에게 제사 지내는 모습에서 유래. 일이 막힘없이 잘 풀리고 성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역에서 매우 긍정적인 길(吉)함을 나타내는 단어 중 하나이다.
¹⁹ “素履 往 无咎”: 리괘 초구(初九) 효사.
²⁰ 소상전(小象傳): 십익(十翼) 중 상전(象傳)의 일부로, 각 효사(爻辭)에 대해 그 의미를 부연 설명하는 부분. 보통 “상왈(象曰)…”로 시작한다.
²¹ 탄탄(坦坦): ‘평탄할 탄(坦)’이 겹쳐진 말. 길이 넓고 평탄하여 걷기 편안한 모습을 나타낸다.
²² 유인(幽人): ‘그윽할 유(幽)’에 ‘사람 인(人)’. 세상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숨어 덕을 닦는 사람. 속세의 명예나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 은자(隱者)나 군자를 비유한다.
²³ “履道坦坦 幽人貞 吉”: 리괘 구이(九二) 효사.
²⁴ “眇能視 跛能履…”: 리괘 육삼(六三) 효사.
²⁵ 색색(愬愬): ‘두려워할 색(愬)’이 겹쳐진 말. 매우 두려워하고 조심하며 신중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²⁶ “履虎尾 愬愬 終吉”: 리괘 구사(九四) 효사.
²⁷ 쾌(夬): ‘결단할 쾌’. 43번 괘 택천쾌(澤天夬)의 쾌와 같은 글자. 여기서는 ‘과감하게’, ‘결단력 있게’라는 부사로 쓰였다.
²⁸ “夬履 貞 厲”: 리괘 구오(九五) 효사. ‘려(厲)’는 ‘위태로울 려’로, 길흉 판단이라기보다는 ‘위태로우니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²⁹ 상(祥): ‘상서로울 상’. 길한 징조, 복됨을 의미한다. ‘고상(考祥)’은 자신이 걸어온 길의 결과가 과연 상서로웠는지, 즉 올바르고 좋은 결과를 낳았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평가한다는 의미이다.
³⁰ 선(旋): ‘돌 선’. ‘돌아오다’, ‘회선하다’. 여기서는 반성을 통해 다시 올바른 도(道)나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³¹ “視履 考祥 其旋 元吉”: 리괘 상구(上九) 효사. ‘원길(元吉)’은 ‘으뜸 원(元)’, ‘길할 길(吉)’로, 가장 크고 근본적인 길함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