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답다는 것, 그 아름다움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사주(四柱) 길잡이 2025. 8. 18. 23:22  

 서론: 실존의 가장 깊은 물음,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는 단순히 사춘기의 혼란이나 철학자의 현학적인 질문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생의 어느 길목에서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근원적인 질문이자, 인문학이 탐구해 온 가장 오래된 화두다. 사회의 기대, 타인의 시선, 시대의 요구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나’라는 존재를 외부의 틀에 맞추어 재단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나답지 않은 나’로 살아가는 법을 익히지만, 그 대가로 실존적 공허와 소외를 경험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기 발견과 삶의 충만함은 결국 ‘나답게 사는 것’, 즉 자기 고유의 존재 방식을 긍정하고 실현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내가 나답다는 건, 곧 아름답다”라는 하나의 명제를 세울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위로나 감상적인 표현을 넘어, 우리 언어의 뿌리에서부터 실존 철학의 핵심, 그리고 미학의 본질을 관통하는 깊이 있는 통찰이다. 이 글은 이 명제가 어떻게 인문학의 여러 영역과 만나며 그 의미를 확장하는지 탐구하고자 한다.

1. ‘아름다움’의 어원: 존재의 온전함을 향한 언어적 지혜

우리가 미학을 논하기 전에 먼저 우리말 ‘아름답다’의 뿌리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국어학적으로 ‘아름’은 ‘개인의 품’ 혹은 ‘두 팔을 벌려 껴안은 둘레’를 의미하는 명사 ‘알’에서 파생되었다. 즉, **‘아름답다’의 원형적 의미는 ‘나답다’, ‘자기 자신과 같다’**는 뜻을 품고 있다. 무언가를 넉넉히 품어 안아 온전히 하나가 된 상태, 그것이 우리 선조들이 생각한 아름다움의 본질이었다.

이는 단순히 외형적 미(美)를 넘어선다. 서양 미학이 종종 황금비율과 같은 객관적 조화나 대칭을 미의 기준으로 삼았다면, 우리말 ‘아름답다’는 존재 그 자체가 분열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서 온전히 있을 때 발현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꾸며내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자기 고유의 결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우리 언어가 품고 있는 아름다움의 원형이다. 이처럼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2.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 근대적 자아의 소외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는 비교와 평가의 세계, 즉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말한 ‘타인의 시선이라는 지옥’ 속에 놓여 있다. 학력, 직업, 재산, 외모, 심지어 SNS의 ‘좋아요’ 수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평가는 언제나 우리를 규정하고 옥죄려 든다. 이 과정에서 현대인은 자신의 본모습보다 ‘보여주기 위한 모습’, 즉 페르소나(persona)를 가꾸는 데 몰두한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은 이러한 현대인의 성격 구조를 ‘시장 지향성(marketing orientation)’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자기 자신을 시장에 내다 팔 상품처럼 여기며, 시대가 요구하는 ‘잘 팔리는’ 특성들을 자기 것인 양 채택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은 망각되고,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 삶의 에너지를 소진한다.

또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Byung-Chul Han) 은 현대 사회를 ‘성과사회(Leistungsgesellschaft)’ 로 규정하며, 개인이 스스로를 착취하는 자기 착취의 시대라고 진단했다. 타인의 강요가 아닌, ‘더 잘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최적화하며 소진(burnout)된다. 이러한 삶은 화려해 보일지언정 결코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자기 존재와의 조화가 아닌, 끝없는 자기 소외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3. 자기다움의 회복: 진정성의 미학

“내가 나답다”는 것은 결국 ‘자기다움(selfhood)’ 또는 ‘진정성(authenticity)’ 을 지키는 것이다. 진정성은 자존감의 뿌리이자, 모든 창조적 행위의 원천이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큰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도 늘 불안에 시달린다. 반면, 소박하게 살더라도 자기답게 살아가는 사람은 내면에서부터 빛이 난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미학적 관점을 발견한다. 아름다움은 외부의 기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적 진정성이 외부로 발현될 때 나타난다. 예술 작품을 생각해보자. 시대의 유행을 급급하게 따라 한 작품은 금세 잊히지만, 작가 고유의 시선과 고뇌, 독창적 감각이 담긴 작품은 시간을 초월하여 감동을 준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의 그림이 타인의 인정이 아닌, 자신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정직하게 마주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일본의 ‘와비사비(わびさび)’ 미학, 즉 불완전하고 소박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것보다, 있는 그대로의 세월의 흔적과 고유한 결을 존중하는 미의식이다. 인간의 삶도 이와 같다. 흠결 없고 완벽한 삶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고유성을 끌어안고 자기만의 서사를 써 내려가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미학적 가치를 지닌다.

4. 실존의 명령: “너 자신이 되어라”

철학적으로 “내가 나답다 = 아름답다”는 명제는 하나의 실존주의적 선언이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는 인간 현존재(Dasein)가 일상 속에서 ‘그들(das Man)’의 방식으로, 즉 남들이 사는 대로 익명적으로 살아간다고 보았다. 그러나 불안과 같은 근본적인 기분 속에서 우리는 본래적인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라는 ‘양심의 부름’을 듣게 된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이 부름에 응답하여, 세상이 정해준 역할이 아닌 자기 고유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선언했다. 인간은 정해진 본질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서 스스로의 선택과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창조해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나다움’이란 어딘가에 숨겨진 본성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빚어가는 치열한 과정이다.

이러한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다움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되어가는 과정(becoming)’ 그 자체에 깃든다. 자기답게 살아가려는 의지와 투쟁, 그 실존적 결단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다.

5. 한국적 미의식의 현대적 계승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있는 그대로를 귀하게 여기는 미학’, 즉 ‘무기교의 기교(無技巧의 技巧)’ 를 존중해왔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한옥의 처마선, 인위적인 대칭을 거부하는 달항아리의 넉넉한 곡선, 투박하지만 정직한 멋을 담은 막사발에는 모두 ‘자기다움의 미학’이 깊이 스며 있다.

조선 후기 서예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의 글씨는 이러한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의 말년 ‘추사체’는 기존의 아름다운 서체 공식을 파괴하고, 자신의 고독하고 강직한 내면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파격적이고 괴팍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한 인간의 전 생애가 응축된 진정성이 담겨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낀다.

따라서 “내가 나답다 = 아름답다”는 명제는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깨달음을 넘어, 이러한 한국적 미의식의 본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계승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자기다움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 문화의 가장 깊은 정신을 이어가는 행위인 셈이다.

6. 삶 속에서 ‘나다운 아름다움’을 실천하는 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철학적, 미학적 명제를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을까?

  • 비교를 자기 성찰로 전환하기: 타인과의 횡적인 비교를 멈추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종적인 성찰로 나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남보다 나은지가 아니라, 내가 어제보다 더 나다워졌는지다.
  •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기: 삶을 단순화하는 것은 본질에 집중하는 과정이다. 타인의 기대, 사회적 허례허식, 불필요한 욕망을 덜어내고, 내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만 남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 자신만의 시간성(時間性)을 존중하기: 세상의 속도(Chronos)가 아닌, 내 삶의 고유한 리듬과 때(Kairos)를 존중해야 한다. 남들이 달려간다고 조급해할 필요 없이, 자신만의 보폭으로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 나다운 삶이다.
  • 작은 진정성의 순간들을 쌓아가기: 말과 생각, 행동이 일치하는 작은 순간들을 의식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작은 선택들이 모여 ‘나다운 삶’이라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완성한다.

7. 맺으며: 존재 자체가 빛나는 순간

“내가 나 답다는 건, 순우리말로 아름답다.”

이 명제는 단순한 언어유희를 넘어, 우리 언어 속에 깃든 철학,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통찰, 미학의 본질, 그리고 삶의 지혜를 하나로 엮어내는 강력한 인문학적 선언이다. 아름다움은 외부에서 획득하거나 타인에게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때 내면에서부터 발하는 빛이다.

삶은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고, 타인의 시선은 늘 우리를 시험대에 올린다. 그러나 그 모든 소음 속에서도 자기 고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기다운 길을 묵묵히 걸어가려는 태도는 그 자체로 존엄하며 빛난다. 우리는 바로 그 실존의 순간을 가리켜 ‘아름답다’ 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자기다운 하루를 살아가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일 수 있다.

“나는 나다. 그리고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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